딸은 하버드, 아들은 자폐아…이민 20년 '눈물의 모정'

미주중앙

입력

둘루스 자택에서 안영란 씨가 자폐증 아들 수민 씨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큰딸은 명문 하버드 대학 졸업, 작은 아들은 자폐증 장애인…. 하나 키우기도 벅찬 자식을 둘이나 길러낸 모정이 있다.

둘루스에 거주하는 안영란(49) 씨가 그 주인공이다. 두 자식을 길러낸 안씨의 20년 세월은 '어머니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안씨의 작은 아들 수민(미국명 피터) 씨는 올해로 20세. 어엿한 성인 나이지만 그는 자폐증 장애인이다. 17년전 신발가게를 운영하느라 바빴던 안씨는 3살 아들의 자폐 증세를 알게됐다. 데이케어 교사가 아들의 이상한 행동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 때부터 안씨의 고된 싸움은 시작됐다.

17년전만 하더라도 자폐증은 한인에게 매우 생소한 증상이었다. 주변에서 이렇다할 정보를 찾을수 없었다. 궁리끝에 한국의 서울대 의대를 찾아갔지만, 그는 더욱 큰 절망을 맛봤다. 학회에서 만난 의사는 "자폐는 평생 완치될수 없는 장애"라고 말했다. 안씨는 1시간 내내 울면서 강의를 들었다. "희망을 갖고 절망을 맛보기보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증상이 개선되는 기쁨을 누리는 편이 낫다"는 의사의 냉정한 조언만이 되돌아왔다.

한국에서 절망만 맛본 안씨는 아들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스머나의 특수교육 기관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메트로 애틀랜타 전역을 다니면서 스피치, 미술, 음악, 암벽등반 등 치료에 도움이 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안씨는 "아침 기상 후부터 다운타운, 미드타운, 조지아 북쪽 병원까지 하루에 100마일 이상을 차로 달렸다. 자폐증상과 관련된 기관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찾아갔다"고 그는 회상했다.

안씨는 지금도 큰딸 수연(23)씨에게 미안하다. 집안의 모든 신경이 동생에게 쏠려있을 때에도, 큰딸은 묵묵히 자기 할일을 했다. 노스귀넷 고교를 졸업해 하버드, 예일,스탠포드, 브라운, 시카고 등 8개 명문대학에 동시에 합격해 한인사회를 놀라게 했다. 당시 수연씨가 하버드에 제출한 에세이에는 자폐증 동생을 지켜보는 누나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친구들이 자폐증 동생을 놀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냥 자리를 피할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더욱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수민이의 장애 때문에 더 큰 상처를 입은 분들이 부모님이시다. 그래도 나는 동생이 고맙다. 네 덕에 항상 어머니와 함께 있을수 있으니'
수연씨는 결국 명문 하버드대를 선택했다. 전공으로 문학을 택해 최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어머니 안씨는 부모 뒷바라지도 없이 명문대를 졸업한 딸이 미안하고 대견할 뿐이다. 안씨는 "딸에게 따로 공부시킨 것도 없다. 그저 동생을 데리러 가는 자동차 안에서 책을 보게 한 것 뿐"이라며 "딸의 감성과 사고능력은 자동차 안에서 길러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를 위한 안씨의 배움은 현재진행형이다. 매주 장애우 선교단체 '밀알선교단'과 조지아 장애인 단체에서 교육을 받는다. 덕분에 수민 씨의 상태도 많이 호전됐다. 현재 그는 태권도와 피아노, 테니스 등을 배우면서 월마트에서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가는 부모를 위해 커피를 타고, 집에서 혼자 갈비를 구워먹을수 있을 정도다. 자폐증 치료를 위해 9살부터 시작한 미술에 재능을 보여, 최근에는 수민씨의 작품이 한 비영리단체 로고로 채택되기도 했다.

어머니 안씨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다. 수민 씨가 대학 생활을 경험하는 것이다.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요.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하니까요. 일반 학생들에게도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구요."

20년 헌신의 세월을 보낸 안씨에게 자녀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에 대해 안씨는 "내 아이들은 완전하게 창조된 하느님의 걸작품"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나에게 늘 감동을 주는 존재죠. 아이들을 통해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고, 여전히 '순수함'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가족을 사랑하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헌신해 온 그는 이민자 가정의 위대한 어머니다.

권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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