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을 뻔한 학교 구한 선생님들께 제자들은 ‘깜짝공연’을 선물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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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기도 동두천시 탑동초등학교에서 이남봉(59·오른쪽) 교장과 교사·학생들이 악기를 들고 웃고 있다. [김경희 기자]

“얘들아, 준비 됐지? 선생님들 오시면 깜짝 놀라게 해드리자!”

 14일 경기도 동두천시 탑동초 급식실. 전교회장인 6학년 안희선양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오전 9시쯤, 교무회의를 마친 선생님 10여 명이 이남봉(59) 교장을 따라 급식실에 들어섰다. 학생들은 머리 위로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선생님들을 반겼다. 선생님들의 왼편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1주일간 몰래 연습한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의례적인 스승의 날 행사인 줄만 알았던 선생님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5학년 설원재군은 “학교가 없어지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전교생 115명, 교사 19명의 조그만 시골학교. 동두천 시내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탑동초는 1970년대만 해도 700여 명이 다니던 학교였다. 그러나 10여 년 전 주변에 신시가지가 생기면서 학생 수가 급감했다. 2010년 2월, 이 교장이 부임했을 때 전교생은 6학급 72명에 불과했다.

 환경은 열악했다. 전교생 10명 중 7명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나 한부모 가정 자녀였다. 아이들은 열등감에 자신감을 잃고 겉돌았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없을까. 고민하던 이 교장은 영화 ‘엘 시스테마’를 보고 무릎을 쳤다. “음악으로 희망을 일깨우자”라는 생각을 했다. 우선 모든 학생과 교사가 참여하는 140인 오케스트라를 시작했다.

  사비 1500만원을 털어 트럼펫·트롬본 등 15종류를 구입했다. 이후에도 교사 연수비 등 소모성 경비를 줄이고 교육청과 시청 지원을 받아 악기를 장만했다. 지금은 색소폰 19대, 바이올린 25대, 피아노 12대 등 학생 수보다 많은 150대를 갖췄다. 강사 부를 돈이 없어 교사들이 직접 악기를 배워 가르쳤다. 이 교장과 교사들은 최소 2~3개의 악기를 다룬다.

 매주 수요일 오후가 되면 탑동초는 악기연습실로 변한다. 각 학년 교실에선 클라리넷·트럼펫 등의 수업이 열린다. 특수반 학생도 예외는 없다. 근육에 점점 힘이 빠지는 근위축증을 앓는 2학년 김상은양은 기관지가 약해 숨쉬는 것도 힘들지만 트럼펫을 배우고 있다. 특수반 담임 김지현(26·여) 교사는 “몸이 불편한 아이들도 악기를 통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며 자신감을 찾았다”고 했다. 바이올린 등 5개 악기를 다루는 5학년 전찬영군은 “선생님이 부모 같아 너무 좋다. 중학교에 가더라도 여기 와서 연습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학생 실력에 따른 맞춤형 수업을 하자 실력도 부쩍 좋아졌다.

 2년 전만 해도 폐교를 걱정하던 탑동초는 이제 근처 의정부에서도 유학 오는 학교가 됐다. 올해 전교생은 115명으로 2년 새 43명이 늘었다.  

동두천=김경희 기자

◆엘 시스테마(El Sistema)=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 마약과 폭력 등에 노출된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책임감과 꿈을 길러주는 프로젝트다. 2008년 영화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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