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한숨 … ‘노량진 로또’ 추첨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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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 ‘가게 자리 재배치 추첨’이 14일 열렸다. 한 상인이 수산시장 건물 회의실에서 자리 번호를 뽑고 있다. 수협중앙회는 2002년 노량진수산㈜을 인수한 뒤 2003년부터 ‘형평성’을 이유로 3년마다 추첨을 통해 자리를 재배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와! 통로다 통로. A급 자리다.”

 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청천홍어’의 이숙희(56·여)씨가 시장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이씨는 이곳에서 30년 넘게 장사했지만 여태껏 ‘명당’으로 불리는 통로 쪽 가게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통로 쪽은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출구와 주차빌딩과 가까워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는 ‘물 좋은 가게’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로또’ ‘뽑기 올림픽’으로 부르는 자리 재배정 추첨이 14일 시작됐다. 전체 750개 가게 자리를 3년마다 재배치하는 시장 내 최대 행사다. 가게 넓이(5.09㎡)는 동일하고 임대료도 별 차이가 없지만 위치에 따라 매출이 3~5배 차이가 난다.

구석진 자리 상인들의 불만이 크자 수협중앙회는 2002년 노량진수산㈜을 인수한 뒤 이듬해부터 3년마다 추첨을 통해 자리를 재배치하고 있다. 750개 가게는 목에 따라 최상위 A급에서 F급까지 6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이날 자리 추첨은 수산시장 사무실 2층에서 경찰이 참관한 가운데 열렸다. 상인들은 가게 번호가 적힌 종이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통(지름 1㎝, 높이 2㎝)을 뽑았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애절한 모습이었다. 추첨함 앞에서 기도하거나 정장을 차려 입은 상인, 한 손에 부적을 쥔 채 뽑기를 하는 이도 있었다.

 희비가 갈렸다. 대양수산 독고혜란(55·여)씨는 아침에 ‘행복한 날 되세요’, ‘대박 좋은 날’ 등 지인들로부터 수십 통의 문자를 받은 덕분에 A급 자리를 뽑았다며 좋아했다. 그는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며 인사하다 눈물을 흘렸다.

반면 박모(59)씨는 추첨함을 이리저리 흔든 뒤 신중히 뽑았지만 통로와 먼 F급 자리를 손에 쥐었다. “운이 없나 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모(74)씨는 “3년 전에도 목이 안 좋았는데 또 그렇게 됐다”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날 수산시장 사무실에선 350여 가게에 대한 추첨을 마쳤다. 15일에는 나머지 400개를 추첨한다. 상인들의 자리 대이동은 30~31일 이뤄진다.

최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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