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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진보당 당권파 폭력은 민주주의 파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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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2일 발생한 통합진보당 당권파 폭력사태는 한국 진보정치에 근본적인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부정선거 논란이나 당권 갈등을 넘어 정당 민주주의 자체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당권파 세력은 중앙위 회의를 방해하면서 부정선거 진상조사를 지휘했던 조준호 공동대표의 멱살과 머리채를 잡고 옷을 찢었다. 부정선거 규탄에 앞장선 유시민 공동대표는 안경이 날아가는 봉변을 당했다. 당권파의 욕설과 고함 속에 회의는 무기한 정회됐다.

 이 사태는 내용이나 논리의 대립이 아니라 민주적 형식과 절차를 아예 깔아뭉개는 것이어서 심각하다. 1987년 폭력배 ‘용팔이파’가 동원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 때도 당원들이 대표를 폭행하는 일은 없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정당 폭력 유형이 가장 진보적이며 가장 민주적이라고 자칭하는 제3당에서 벌어졌다. 진보논객 진중권씨는 “사교집단의 광란을 보는 듯”이라고 표현했다. 민주주의가 없는 정당은 보편적 교리(敎理)가 없는 종교집단과 같다.

 공식적인 당 진상조사위가 비례대표 경선을 ‘총체적 부정선거’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회가 지도부 퇴진과 비례대표 경선후보 사퇴를 권고했다. 공동대표 4인은 사퇴했지만 당권파가 비대위 구성과 경선후보 사퇴를 거부해 당은 표류하고 있다. 선장이 없는 배가 된 것이다. 정상적인 정당 세력이라면 운영위가 권고한 대로 비대위가 추가적인 진상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의 가닥이라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권파는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도, 문제의 해결도 모두 거부하고 있다. 정당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선과 전횡이다.

 진보당 폭력사태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1 야당 민주당이 이런 진보당과 총선연대와 정책연합을 한 것은 옳은 것이었나. 그리고 무조건적인 대선연대는 바람직한 것인가. 진보당 내에선 이질적인 세력끼리 과연 선거부정이란 폭탄을 안고 동거를 계속할 수 있나. 곧 19대 국회가 시작된다. 선거 부정을 저지른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주고, 그 영향으로 당선된 후보에게 국민 세금을 주어야 하나. 국민은 정당득표율 10.3%를 주었다. 그런데 부정과 폭력으로 응답하는 정당이 진보정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 선거 부정의 기획자와 수행자는 누구인지 정확한 진상은 언제 드러날 것인가.

 당권파는 운영위 다수결 결정에 따라야 한다. 경선후보는 사퇴하고 중립적이며 사회적 신망을 받는 비대위가 수습안을 추진해야 한다. 당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당 밖의 권위’가 칼을 잡을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경선은 사실상 당내 행사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국회의원을 뽑는 국가적 행사였다. 국민의 이익과 떼어질 수 없는 문제다. ‘우리의 감투이니 우리가 지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권파의 오산이다. 헌법기관은 그들이 아니라 국민의 재산이다. 국민 재산이 마구 유린되는 사태를 사회가 방관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