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바쇼와 여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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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의 우아하고 인상깊은 수채화는 변화하는 사계절의 모습을 적절하고 풍성한 표현력으로 보여준다. 효과적인 시각 설정을 통하여 표현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일본 전통 판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그림책 '바쇼와 여우' 에 대해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올라 있는 서평들은 이렇게 그림에 대한 찬사로 시작된다.

지난 9월 말 발매된 뒤 한달 반 만에 3만9천부 이상 판매되며 뉴욕 타임스 선정 아동용 그림책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의 그림은 한국인 한성옥(43) 씨가 그렸다.

섬세하게 빛을 조절하고 카메라의 앵글을 자유자재로 움직인 듯한 원근법을 사용하면서 17세기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俳句.17자 정형시) 시인 바쇼와 여우의 시짓기 대결을 담은 동화 내용을 페이지 양면 가득히 만개한 벚꽃, 전통 의상을 입은 여우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그림들은 한국 그림 동화의 국제화에 대해 하나의 비전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이라고 알록달록하고 예쁜 그림만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그림책들은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하고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왜곡하는 경향이 심했어요. 미국에선 그림책의 50% 이상이 사실적인 삽화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그림이 얼마나 내용의 충실한 전달자 역할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현재 이화여대 디자인 대학원 등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강의하는 그가 학생들에게 먼저 자료수집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먼저 내용을 확실히 파악한 뒤 그에 가장 걸맞은 기법을 선택해야만 좋은 삽화, 좋은 그림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씨는 '바쇼와 여우' 를 그리기 위해 먼저 배경이 된 후쿠오카 지방에 대한 사진 및 글들을 수없이 찾아 봤다.

또 시간적인 배경이 주로 밤이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이 동화를 보다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오두막과 벚꽃나무.산.시내 등을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놓고 구체적인 공감각을 느끼며 앵글을 연구하기도 했다.

한씨는 이화여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에서 유학하던 시절 출판사 '펭귄' 의 자회사를 통해 그림책 '황노인과 금돼지' 를 출간한 것을 계기로 미국 출판계의 주목을 받았다.

'콩쥐 팥쥐' 등도 현지에서 그림책으로 냈고 귀국 후에도 미국 교과서 삽화 작업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곧 한국 보림출판사를 통해 출간할 그림책에선 아주 다른 기법의 그림을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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