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경제운용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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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경제운용 방향의 골자는 상반기에 부분적인 경기부양책을 써 하반기엔 경제를 회복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그동안 구조조정 과정에서 너무 강해진 정부 입김을 다시 낮춰 시장기능을 최대한 되살려보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내년 상반기 4∼5%대의 성장률이 하반기에 회복세로 돌아서 연간 성장률이 5∼6%가 될 것이라는 전망치는 상반기에 집중할 제한적인 부양책이 실효를 거두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러나 부양을 염두에 둔 이같은 정책방향이 자칫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성택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은 선후를 가릴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기부양 효과 있을까=금융시장이 제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우선 재정자금을 활용해 막힌 구멍을 뚫는다는 복안이다.그런 다음 구조조정의 효과가 나타나고 금융시장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통화정책을 함께 쓴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이같은 재정정책의 강도가 그리 높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재정적자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 1백조2천억원 중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를 제외한 60∼70%를 상반기에 집행해 소비와 투자심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중소기업 지원 ·실업대책 등 경기부양과 직결된 투자비 성격의 예산 38조원의 80% 이상을 상반기에 집중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경기부양책이 먹혀들어 경제가 상승세로 돌아설 것을 기대하기는 아직은 무리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우선 배정된 예산이 실제로 집행되기까지는 최소 2∼3개월의 시간이 걸리고 지자체가 머뭇거릴 경우 집행은 더욱 늦어질수 있다는 분석이다.

홍익대 박원암 교수는 “1998년에도 예산을 상반기에 최대한 집행했는데,전체의 60% 정도였다”며 “정부가 기대하는 것 만큼 효과가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실제로 98년 이후 경기가 활기를 띄기는 했지만 그것은 공적자금 투입과 외환위기 이후 성장률 급락에 따른 반작용이 강했던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실업대책 등에 지출을 늘려 재정적자폭을 소폭 늘리는 방안을 권하는 전문가도 있다.이화여대 전주성 교수는 “공적자금의 원리금상환 등의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재정지출을 좀 더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경제전망을 하면서 정부가 ‘선 구조조정 후 경기부양’의 원칙을 지켜줄 것을 당부해 섣부른 경기부양이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우려가 있음을 지적한바 있다.

정부는 국채나 공적자금 조성을 위한 예금보험채권 발행시기와 물량을 신축적으로 조정해 채권물량이 늘어나 시장금리가 높아지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동시에 통화 ·신용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한다고 밝혔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통화공급을 늘릴 여지를 둔 것이다.

정부관계자는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은 만큼 통화를 늘릴 수도 있겠지만 금융시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 당장 활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마무리=정부는 구조조정 마무리에 시장의 힘을 최대한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현재 4%로 묶여 있는 은행의 동일인 소유지분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내년 2월까지 만들어 은행의 주인을 찾아주고 책임경영을 유도하기로 했다. 올 연말까지 마무리하려던 일이었지만 반대의견이 많아 조금 늦어지는 것이다.

부실기업 상시퇴출 시스템 정착에 반드시 필요한 조치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의 사적화의로의 전환,파산·화의·회사정리법 등 도산 3법을 통합하는 것도 내년으로 미뤄졌다.

내년 3월까지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고 2002년 6월까지 편입 은행의 중복부문 통합과 도 ·소매 금융 등 기능별 재편도 끝내기로 했다.

부실기업 정상화를 돕기 위해 ‘부실기업 경영전문가 풀’을 만들어 필요한 인력을 미리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의 단계적 도입문제에 대해서는 소송대상을 미리 고시하기로 했다.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집단소송 대상은 일정규모 이상의 상장 ·코스닥 법인의 허위공시 ·내부거래 ·시세조작 등이다.

◇기업 경쟁력 강화=수출이 살아나야 경제가 다시 활기를 찾는다는 판단 아래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대폭 늘렸다. 이미 발표된 설비투자금액의 10%를 세금에서 깍아주는 임시투자세액 공제제도를 내년 상반기 중 한시적으로 도입한다.

벤처투자자금이 1조원 추가로 조성되고 중소·벤처기업의 회사채 2천억원에 대해 부분적인 보증도 해줄 계획이다.

기존 재래산업을 정보산업화하기 위해 민간주도로 1백억원 규모의 ‘e-비즈니스 펀드’를 만들고 중소기업 1만개를 선정,정보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수출 증대를 위해 무역금융과 수출보험의 규모를 늘리는 한편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섬유 등 수출 주력제품의 세계시장 선도전략을 수립해서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밖에 1백50억달러의 외국인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남북경협을 위한 행정절차를 간소하는 등 대내외 경제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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