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세권 보상 합의 전 청사진…너무 앞서나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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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최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111층 620m) 랜드마크빌딩의 디자인이 공개되는 등 윤곽을 드러낸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이 개발 사업의 최대 난제는 서부이촌동 토지보상 문제다.

사업추진에 반대하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을 설득해 토지보상을 진행해야 계획대로 내년 착공할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신은 여전히 커 보인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2동 A공인 관계자는 “보상 논의도 제대로 끝나지 않았는데 개발 청사진을 발표한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인근 B공인 관계자도 “5년간 토지허가거래구역으로 묶이면서 재산권 행사를 못해 불만인 주민이 많다”며 “이쪽에선 반대가 심한데 저쪽에선 비까번쩍한 계획을 내놓으니 좀 어이없다”고 말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시행사인 용산역세권개발은 지난 2일 23개의 화려한 초고층빌딩이 한강변을 수놓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각 건물은 건축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세계적인 건축가가 참여하는 18개 외국계 회사가 내놓은 것들이다.

일부 주민들 "토지보상 협상 안됐는데 청사진이라니"

용산역세권개발은 오는 9월까지 세부 설계를 마치고 내년 상반기 건축허가를 받아 착공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게 되면 2016년엔 용산의 미래상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그런데 이런 모든 계획엔 전제가 있다. 서부이촌동의 12만4000㎡에 대한 토지보상이 원활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이 서부이촌동과 용산철도정비창 부지 44만2000㎡를 포함한 56만6000㎡를 개발하는 계획이다.

그런데 서부이촌동 주민 상당수는 아직 개발사업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과 올 초엔 서울 시청 앞에 모여서 ‘강제 수용 계획으로 재산권에 침해를 당했다’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용산역세권개발이 지난해 9월 보상 기준을 법에 따른 ‘투기이익을 배제한 실거래가’로 밝힌 게 계기가 됐다.

용산역세권개발은 따라서 새로운 보상계획을 서울시와 협의하고 있는 중이다.

토지보상법에서 정한 것과 별도로 분양가 할인, 무이자 이주비 융자, 이사비 지원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주민들의 어떻게 반응할지는 예측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주 대상만 3840건에 달하고 주민들이 아파트,상가, 빌라 등 어떤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다. 주민들의 입장에 따라 10개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을 정도여서 보상 기준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용산역세권개발 관계자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 어느 정도 선에서 보상안을 내놓아야 할지 아직도 고민 중"이라며 "무작정 보상을 많이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우면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사업에 참여하는 30개 민간기업간에도 이견이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주민들의 의견이 너무 각양각색이어서 어떤 기준에 맞춰야 받아들여질지 난제”라며 "투자에 참여하는 민간기업들과 보상안에라 대해 거의 매일 협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이달 내 보상계획 발표 예정

어쨌든 용산역세권개발과 서울시는 이달 이내에 보상계획을 새로 마련해 주민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이후 투표 등의 방법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서부이촌동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포함시킬지 결정할 방침이다.


만약 주민들이 서부이촌동이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 빠지기를 바란다고 최종 의견이 모아지면 어떻게 될까.

사업계획을 완전히 다시 세워야 한다. 서부이촌동엔 대림, 성원 등 이른바 ‘성냥갑’ 아파트가 한강변을 가리고 서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배치 등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 국내외 설계사 500여명이 참석해 대대적으로 연 용산국제업무지구 설계 발표회는 우스운 해프닝이 될 것이다.

우스운 해프닝이 안되려고 안달을 하는 쪽은 당연히 용산역세권개발쪽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협상에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됐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직 보상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곳을 포함해 대대적으로 개발 계획을 발표한 것은 해당 지역 주민들을 더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이라면서 “아무래도 용산역세권개발이 전략을 잘 못 세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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