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조사결과 인정 못해” 비당권파 “뻔뻔함에 질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그때는 웃었지만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당직자들과 19대 국회의원 당선인들이 첫 모임을 가졌다. 뒷줄 오른쪽부터 비례대표 당선인 이석기(2번)·김재연(3번)·박원석(6번)·김제남(5번)·윤금순(1번), 김선동(전남 순천-곡성) 의원, 오병윤(광주 서을)·이상규(서울 관악을)·강동원(남원-순창) 당선인. 앞줄 오른쪽부터 유시민·이정희·심상정 공동대표. [최승식 기자]

통합진보당이 내전(內戰)에 돌입했다. 정파의 존망을 건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2일 발표된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면서다. 이정희 대표의 당권파(경기동부연합), 이에 맞선 유시민 대표의 국민참여당계와 심상정 대표의 평등파 등 비당권파는 분당(分黨)을 각오한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충돌은 1일 밤 긴급 대표단 회동에서 시작됐다. 진상조사단장인 조준호 대표가 조사 결과를 설명하자 유·심 대표는 이 대표에게 “당권파가 당 혁신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압박했다고 한다. 사실상 ‘이정희 대표 사퇴’ 요구였다. 부정선거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었다. 이 대표는 그러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고 한다. 결국 밤샘 회동은 이견만 확인하고 끝났다.

 조 대표는 2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례대표 1~3번 당선인의 사퇴와 이 대표 책임을 공론화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말을 아꼈다. 조 대표 측에선 “당사자들에게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위한 시간을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동부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의엽 정책위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투표 결과를 부정·조작 선거라고 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라고 되받았다. 진상조사단의 발표를 고위 당직자가 공개 비판한 거다. 그러면서 “ 구체적인 정황 제시도 없이 ‘부정이 있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만 얘기해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고 했다. 그는 “이정희 대표와 의견을 나눈 뒤 발표하는 것”이라며 경기동부의 공식 입장임을 강조했다. 비당권파의 인책 요구를 공식 거부한 셈이다. 비당권파는 격분했다. 참여당계 인사는 “백주대낮에 이런 부정을 해 놓고도 오리발을 내밀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며 “ 저런 식이 면 분당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평등파 핵심 관계자도 “한마디로 이정희 대표가 버티겠다는 것”이라며 “뻔뻔함에 질려 버렸다”고 했다.

 충돌이 예사롭지 않은 건 차기 당권의 향배가 걸린 문제라서다. 총선 직전 서둘러 통합하면서 과도기적인 공동대표 체제를 지닌 통합진보당은 6월 3일 전당대회를 연다. 이때 ‘1인 당대표’를 뽑기 위해 정파 간 일합을 겨룬다. 경기동부에선 이 대표, 참여당계는 유 대표, 평등파는 심 대표와 노회찬 대변인 등이 출전 대기 중이다. 당권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각 정파의 생존 여부가 갈릴 판국이다.

 현재로선 여전히 경기동부의 우세다. ‘정파 패권주의’라 할 만큼 압도적이다. 사무총장 등 고위 당직을 줄줄이 꿰차고 있다. 총선에선 대거 원내에 진입했다. 물리력에서 뒤진 비당권파는 ‘여론재판’으로 뒤집기에 나섰다. 선거부정에 대한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한다는 거다. 경기동부는 이를 “정치적 음모”로 비난한다.

 관건은 역시 여론이다. 당 안팎에선 경기동부가 여론에서 밀린다고 판단한다면 ‘이정희 대표 카드’를 포기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신 나중에 대선 후보로 내세울 수는 있다는 얘기다. 당의 한 관계자는 “경기동부가 당권 주자로 다른 자파 후보를 내세우든지 비당권파의 균열을 유도하려 유시민 대표에게 양보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당권 유지를 위해선 일보 후퇴 정도는 감수할 거란 뜻이다.

양원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