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유럽 위기 직접 눈으로 보고 듣겠다” 한 달 출장길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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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이 2일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이 회장은 이날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세계적으로 불경기지만 특히 유럽이 문제가 많아서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그러려고 간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약 4주 정도의 일정으로 유럽을 둘러볼 계획이다. 삼성 관계자는 “정확한 일정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여러 나라를 둘러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영 일선에 복귀한 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출장을 주로 다녔는데 경영 관련 출장으로는 이례적으로 긴 편”이라고 덧붙였다.

 첫 방문지는 스페인이다. 2009년 그리스에서 출발한 유럽의 재정 위기가 아일랜드·포르투갈·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까지 도미노처럼 번진 가운데 현재 유럽 위기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나라가 스페인이라는 것이다. 지난 3월 29일 정부의 재정 감축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스페인 노조연맹(CCOO)과 노동총연맹(UGT)이 총파업에 나선 뒤로 스페인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26일엔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국채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두 단계 강등시킨 나라다.

 이 회장이 스페인을 포함해 유럽에 관심을 두는 데엔 이유가 있다. 전자업계에서 유럽은 올해 중점 관리 대상이다.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많은 선진시장이지만 재정위기로 인해 수요가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2008년 말 금융위기로 촉발된 불황이 지난해 말부터 회복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에 유럽은 여전히 고전 중이다.

우리투자증권 박영주 연구위원은 “이미 바닥까지 왔다. 문제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유럽은 중요한 시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럽은 전체 매출에서 북미와 비슷한 3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력 제품인 TV나 휴대전화가 유럽에서도 시장점유율 선두를 지키는 만큼 실적이 나쁘진 않다”면서도 “하나의 국가로 이뤄진 단일 시장이 아니어서 변수가 많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삼성 측에서도 “이 회장의 출장은 복잡한 유럽 상황을 점검하고 적절한 경영 전략을 구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도 “위기일수록 전략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동양증권 박현 연구위원은 “유럽은 글로벌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바닥을 친 만큼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사업 기회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반전할 때 기회를 잡으려면 이럴 때일수록 판매망 관리 등 네트워크 관리가 필요하다”며 “이 회장의 유럽 출장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은 이날 형 이맹희(81)씨와 벌이고 있는 유산 분할 소송과 관련해 “사적인 문제로 개인 감정을 드러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에 앞서 지난달 18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이맹희씨는) 집안에서 퇴출된 양반”이라며 “한 푼도 줄 수 없다. 소송은 끝까지 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은 “앞으로 소송 문제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삼성그룹을 키우는 데에만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말한 대로 4주 후 귀국한다면 그는 이번 소송의 첫 공판이 열리는 30일 하루 전날 돌아오게 된다.

유럽 재정위기

2009년 그리스의 재정위기로 시작돼 아일랜드·포르투갈의 IMF 구제금융 신청으로 확대됐다. 지난해 하반기엔 유로존에서 3, 4위 경제 규모를 기록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재정위기를 맞았다.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위기는 이들 국가의 채권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2월 영국과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EU) 25개국 정상이 모여 총부채비율을 GDP의 60% 이내로 하고 재정적자가 GDP의 3%를 넘지 않도록 하자는 내용의 신재정협약에 서명했지만, 각국의 대선과 맞물리면서 이행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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