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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노동절이 새로운 한국의 변곡점이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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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늘은 근로자의 날(노동절)이다.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 시위를 벌이다 희생된 바로 그날이다. 전통적으로 노동절이면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번 노동절을 맞는 우리의 입장은 남다르다. 노동절이 신성한 노동을 격려하고, 연대의식을 다지는 단순한 기념일로 넘길 수 없을 만큼 노동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 문제의 중심은 정규직 노조와 사용자 간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절반에 가까운 860만 명을 넘어섰다. 심각한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된 지도 오래다. 노동 문제는 더 이상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 노동자가 눈앞의 사용자가 아니라 중국·일본·동남아 근로자들과 경쟁하는 세상이 됐다. 경제 글로벌화로 노동시장도 빠르게 국제화되고 있다. 이 땅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제 노동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話頭)가 됐다.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을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 의원조차 “능력과 성과에 기반하지 않는 노동 차별은 해소돼야 한다”고 외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 수많은 대권 후보가 쏟아져 나오면서 얼마나 파격적인 노동 공약을 내놓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미리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놓지 않으면 언제 ‘복지 포퓰리즘’에 이어 ‘노동 포퓰리즘’이 우리 사회를 휩쓸지 모른다.

 노동 문제는 너무 크고 복잡해져 단칼에 해결할 만병통치약(萬病通治藥)이 없다. 하지만 대안과 해법을 찾으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정치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이나 권력화하고 귀족화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운동은 접어야 한다. 기존의 투쟁을 관성적으로 반복한다면 결코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 문제를 풀 수 없다. 또 하나 노동 문제는 더 이상 노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 모두의 문제라는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장기 저성장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앞으로는 노동량을 더 많이 투입하기보다 노동의 질을 끌어올려야 지속가능한 사회가 보장된다. 일자리는 또한 최대의 복지다. 고용 확대가 노동 문제의 중심이 돼야 하며, 복지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노사관계 차원을 넘어 노동자 교육, 일자리 나누기, 정년 연장 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노사가 충돌하고 투쟁해야 대안과 해법이 도출(導出)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모두 머리를 맞대고, 서로 양보하고, 고통분담을 해야 해법을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앞으로 노동자 진영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열린 자세로 노동 문제에 임해주길 기대한다. 기업들과 사용자 단체들도 “노동으로 재 뿌리지 말라”는 식의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할 것이다. 정부 역시 노동 문제는 고용노동부에만 미룰 사안이 아니다. 범정부적으로, 국가 차원의 큰 틀에서 노동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노(勞)·사(使)·정(政)의 어깨가 한층 무거워지고 있다. 올해 노동절이 새로운 한국으로 가는 변곡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