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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불룩하던 北간부, 1개월 후 피골이 상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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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광일씨

국가인권위의 『북한 인권 침해 사례집』에는 탈북자 등 북한 내부의 증언을 바탕으로 60여 건의 인권침해 사례가 생생하게 수록돼 있다. 특히 이번 사례집엔 8개 북한 수용소에 갇힌 것으로 확인된 278명의 명단이 처음으로 국가기관에 의해 공개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600명 안팎의 수감자 명단을 수집했지만 검증을 거쳐 사실로 확인된 278명만을 추려 사례집에 실었다”고 밝혔다.

 탈북자 출신 정광일(49)씨는 수감자 명단 278명 중 187명분의 자료를 제공했다. 정씨는 “2003년 탈북에 성공해 한국에 도착한 2004년부터 5년에 걸쳐 명단을 만들었다”며 “처음에는 기억을 더듬어 작성해 나가다가 헷갈리는 부분은 나중에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을 통해 확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2000년 4월부터 2003년 4월까지 함경북도 15호 정치수용소(요덕수용소)에 수감됐었다. 중국 옌볜(延邊)에서 무역업을 하다 업무 때문에 남한 사람과 한 차례 접촉한 게 화근이었다. 97년 7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 김정일에게 표창도 받았던 그였지만 하루아침에 간첩 혐의를 받게 됐다. 북한 사회에 환멸을 느낀 정씨는 수용소에서 석방된 직후 탈북했다.

 정씨는 “밖에서 아무리 고위직에 있어도 요덕에 들어오는 순간 밑바닥”이라고 말했다. 수감 당시 남한의 법무부 장관에 해당하는 안창남(64) 중앙인민위원회 법무부장, 차관급인 심철호(53) 체신성 부상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정씨와 같은 반(작업조) 소속이었다. “고위급 간부들은 대개 배가 불룩한 상태로 들어오지만 1개월 남짓이면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변한다”는 게 정씨의 전언이다.

 그는 “고위급 간부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는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대체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 밖에 나서였다”고 설명했다. 똑같은 뇌물수수라도 김 위원장의 의중에 따라 ‘당 권위 훼손’이 될 경우만 정치범수용소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 뇌물수수자는 남한의 교도소에 해당하는 교화소로 보내진다. 정씨는 “정치범수용소는 북한에서 완전히 매장하거나 아니면 김 위원장이 길들이려고 보내는 곳”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북한 내부의 사정이 남한 사회 입맛에 맞게 왜곡돼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 인권에 대해 가감 없이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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