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 맞춤 컨설팅 ③ 재우프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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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재우프레스 공장에서 조주현 회장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조 회장, 기술부 최종희 대리, 생산부 백현동 부장. [사진 재우프레스]

중장비 부품 생산 장비인 프레스 전문 업체 재우프레스의 조혜진(37) 이사는 지난해 6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 인수한 한얼공업의 숨겨진 부실이 하루가 멀다고 새로 드러났다. 주변에서는 재우프레스도 함께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모든 가족이 한꺼번에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어요. 오래전 부도의 악몽까지 되살아났죠.” 재우프레스는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다. 창업자인 조주현(64) 회장과 조 이사를 포함해 조일우(35) 대표, 조경철(34) 차장 등 3남매가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재우프레스는 한 해 매출 200억원이 넘는 건실한 회사다. 창업한 지 6년 만에 매출은 6배까지 뛰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자동차 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245억원의 최대 매출을 올렸다. 재우프레스의 전문분야인 열간단조프레스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데 주로 쓰인다. 조 회장이 30년 된 한얼공업 인수를 생각한 것도 이때다. “한얼공업이 갖고 있는 냉간단조프레스 기술을 가져오면 종합회사로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20억~30억원의 부실을 떠안을 각오는 돼 있었다. 하지만 인수 후 뚜껑을 열자 부실 규모는 그보다 컸고 생산도 적자였다. 조 회장은 “당시엔 막연한 감각에 의존해 내렸던 결정을 크게 후회했다”고 말했다. 한 컨설팅 업체에 자문을 구하자 “2~3년만 운영을 유지하며 수익을 뽑은 뒤 폐업 처리하라”는 절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50명이 넘는 한얼공업 직원까지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모기업 재우프레스까지 위험했다.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했다. 그때 한얼공업의 거래은행이던 IBK기업은행 부지점장이 무료 컨설팅을 제안했다.

 기업은행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한 가지였다. 박현수 기업은행 공인회계사는 “한얼공업과 관련한 자료는 하나도 빠짐없이 달라”고 요청했다. 박 회계사는 2주 동안 한얼공업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검토해 숨겨진 부실을 샅샅이 찾아냈다. 현재의 부실자산은 물론 잠재적인 부채까지 고려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내기 위해서였다. 새롭게 문을 열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려면 ‘바닥’을 확인해야 했다. 20억~30억원의 부실이 추가로 나왔다. 처음 예상했던 규모의 2배 정도였다. 조 회장은 “앞으로의 매출로 커버만 할 수 있다면 50억~60억원의 부실도 안고 갈 수 있다”고 버텼다.

 기업은행은 곧바로 한얼공업의 수익성 분석에 들어갔다. 지난 3년 동안의 자료를 파악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비용과 매출액을 뽑아냈다. 가장 큰 문제는 “비싸게 만들어서 싸게 팔고 있는 한얼공업의 운영 방식”이었다. “비용을 20% 낮추고 수익이 맞는 제품을 생산하면 승산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얼공업이 오랜 시간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거래처에서 공급하는 원자재 가격은 최대 2배까지 높아져 있었다. 재우프레스의 조 이사는 직접 발로 뛰며 거래처를 설득했다. “재우프레스가 한얼공업을 인수했으니 납품 단가를 낮춰달라”고 했다. 업계에서 자금이 튼튼하기로 소문난 재우프레스에 대한 신용 덕분에 가격은 조금씩 떨어졌다.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업체도 눈에 띄게 줄었다.

 수익성이 없는 제품은 과감히 생산을 중단했다. 작업 중 변경되는 부분이 많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던 주문생산 방식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바꿨다. 인터넷 회선료를 포함해 작은 것 하나까지 불필요한 비용은 전부 줄였다. 조 회장은 “안 되는 일에 매달리지 않고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A에서 Z까지 모두 바꿨다”고 말했다. 그러자 마이너스에 머물던 한얼공업의 영업이익이 올해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 잠을 못 이루던 조 이사는 이제는 더 큰 꿈을 꾸게 됐다.

 올해 8월 경기도 시흥시에는 1500평 규모의 새 공장이 문을 열 예정이다. 재우프레스와 한얼공업의 주력 제품이 함께 만들어지는 곳이다. 조 회장은 “지난해 포기하고 한얼공업의 문을 닫았다면 세우지 못했을 공장이다”며 “이제야 두 회사가 진정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웃었다.

특별취재팀=나현철·김선하·임미진·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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