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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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벤 버냉키(Ben Bernanke)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연초 그는 경기 회복 조짐에도 불구하고 3차 양적 완화 정책 가능성을 언급해 시장을 설레게 했다. 그런데 이번엔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불거졌는데도 “지금은 경기부양책을 쓸 때가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버냉키는 25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그는 물론 “유럽 위기가 악화하면 언제든 추가 채권 매입(3차 양적 완화)에 나설 태세가 돼 있다”고 부연은 했지만 연초 보여줬던 강한 투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유럽 지도자들이 전반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고 평가하면서도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유럽 각국이 재정긴축에 합의했으나 최근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유럽 위기 해결의 열쇠를 쥔 채권 국가의 선거에서 긴축 반대론이 힘을 얻고 있는 걸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버냉키는 미국 정치권이 재정적자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정부는 연준이 (재정적자 문제를)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의회가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물가에 대해서도 “최근 올랐지만 아직 Fed의 정책 목표치인 2% 내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Fed는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라고 밝힌 바 있다. 물가상승률이 2%를 넘어가면 Fed가 금리 인상이나 자금 흡수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미리 공표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은 2% 안에 있는 만큼 Fed가 움직일 단계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FOMC도 이 같은 버냉키 의장의 입장을 뒷받침했다. 정례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FOMC는 “미국 경제가 앞으로 몇 분기에 걸쳐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한 뒤 서서히 살아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애초 2.2~2.7%에서 2.4~2.9%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7~3.1%로 직전 보고서(2.8~3.2%)보다 소폭 낮췄다. 아울러 2014년 전망치도 종전 3.3~4.0%에서 3.1~3.6%로 하향 조정했다. 이날 17명의 FOMC 이사 가운데 7명이 2014년 말까지 정책금리가 1%를 밑돌 것이라고 예상해 지난 1월(9명)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경기 회복을 예상한 이사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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