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현 대역전승에 웃을 수 없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의 대표적 신예기사 나현(17) 2단이 LG배 예선 결승에서 중국 ‘4룡’의 하나인 판팅위(16) 3단을 제압해 간신히 한국 바둑의 체면을 세웠다. [사진 넷마블]

24일 열린 LG배 세계기왕전 예선 결승에서 한국의 나현 2단이 중국의 판팅위 3단을 꺾었다. 일곱 판의 한·중 대결에서 여섯 판은 지고 이 판만 이겼다. 나현은 국후 말했다. “이 바둑에 눈과 귀가 쏠려 있어 절망 속에서도 돌을 던질 수 없었다.”

 그렇다. 나현과 판팅위의 대결은 일곱 판의 한·중 대결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았고 나현은 불가능한 역전을 성공시키며 한국바둑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러나 중국 신예들의 무서운 성장 앞에서 한국바둑의 위기는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엔 나현(17)이란 군계일학의 신흥 강자가 있지만 중국엔 ‘4룡’이 있다. 당이페이(18), 판팅위(16), 미위팅(16), 양딩신(14)이 그들이다.

 당이페이 4단은 비씨카드배에서 연승을 거두며 현재 4강에 올라 있다. 또 바이링배에 이어 LG배에서도 험난한 예선을 통과해 32강에 안착함으로써 3개 세계대회에서 무려 15연승을 기록 중이다. 당이페이는 특히 비씨카드배에서 이세돌 9단과 박영훈 9단을 쓰러뜨려 중국에서 ‘최고의 신예’로 극찬을 받았다.

미위팅 3단은 지난해 중국리그에서 구리, 쿵제 등을 격파하며 혜성과 같이 등장한 소년 강자. 비씨카드배에서 박정환 9단과 이창호 9단을 연파해 한국에도 이름을 알렸다. 3개 세계대회 성적은 8승3패. 판팅위 3단 역시 중국리그에서 발군의 성적을 기록한 유망주다. 3개 세계대회에서 11승2패를 기록했고 비씨카드배에서 이영구 9단을, 바이링배에선 김지석 8단을 이겨 크게 주목을 받았다.

 양딩신 3단은 지난 7일 중국 내 기전인 리광배에서 박문요 9단을 격파하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1998년 10월 19일생인 양딩신이 13년6개월 만에 우승하자 중국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한국의 최연소 우승기록은 이창호 9단이 세운 13년11개월.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창호의 기록을 양딩신이 넘어섰다. 올해 세계대회 성적은 8승2패. 비씨카드배에서 강동윤 9단을 꺾었다.

 한국의 신예 중에선 나현 2단이 10승2패로 가장 좋다. 기대를 모았던 최연소 기사 이동훈 초단은 2전2패. 오히려 올해 입단한 변상일 초단이 4승3패로 조금 낫다. 중국은 벌써 오래전에 ‘90 후’라 하여 1990년 이후 출생 신예들의 활약을 예고했다. 하지만 불과 1, 2년 사이에 ‘95 후’란 용어가 새로 등장했다. 95년 이후 출생한 어린 기사들이 ‘90후’와 막상막하의 혈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99년생인 씨에얼하오 2단은 바이링배 32강에 올라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세계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예는 나현뿐이다. 나현은 이미 지난해 삼성화재배에서 쿵제를 격파하고 준결승에 올라 구리에게 패한 바 있다.

 저 위로부터 살피면 조훈현은 녜웨이핑을 압도했고 이창호는 마샤오춘과 창하오를 압도했다. 이세돌은 구리, 쿵제와 평형을 이뤘다. 한국 2위 박정환(19)도 중국 1위 탄샤오(19)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다음은 크게 밀린다. 이 난제를 타개할 방책을 놓고 지금 바둑계에선 백가쟁명이 한창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 [바둑] 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