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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 조명철을 거부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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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조명철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의 곁에는 늘 두세 명의 건장한 보디가드가 뒤따른다. 식사 약속 장소나 동선(動線)을 수시로 바꾸는 일도 잦다. 때론 승합차를 타고 만나기로 한 곳에 나타나 지인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통일부 통일교육원장에 취임한 직후부터 이런 식이었다. 탈북자 출신인 그를 북한이 제거 대상 1호로 지목하고 나서자 관계당국이 24시간 경호에 나선 것이다.

 그는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4번을 받아 당선됐다. 쟁쟁한 인사들을 제치고 여당 후보 명단 4위에 오르자 “도대체 비결이 뭐냐”는 질문이 주변에서 쏟아졌다고 한다. 그가 탈북자 최초의 ‘고위 공무원 가급’(옛 1급)인 통일교육원장에 임용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책이 뭔지 입을 다물고 있지만 조명철은 2만3000여 명의 국내 정착 탈북자가 그려온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 됐다. 한국으로 망명했다 2년 전 사망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걷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하지만 그의 앞에 비단길만 깔린 게 아닌 듯하다. 비례대표 내정 직후 제기된 학력 위조 논란은 이를 예고한다. 그가 김일성대 박사가 아니라 실은 한국의 석사급에 해당하는 ‘준(準)박사’였다는 것이 문제를 들고나온 측의 핵심 주장이다. 조명철 당선자도 이를 인정한다. 다만 1994년 망명 때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측의 권유에 따라 박사라고 쓰게 됐고, 이후 굳어졌다는 해명이다. 문제는 학력 위조 주장을 들고나온 게 일부 탈북 인사와 관련 단체라는 점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거짓도 서슴지 않는 비양심적인 정치꾼”이란 비난을 퍼붓고, 자신들이 받았던 ‘경제학 박사 조명철’의 명함까지 증거물로 제시한다. 그러자 조 당선자를 지지하는 탈북자와 단체가 학력 논란을 제기한 측을 “탈북자 사회의 단결을 해치려는 친북·종북 분자”라고 몰아세우면서 사태는 복잡하게 얽혔다. 사실관계의 다툼이 아니라 감정의 대립으로 치달은 것이다.

 흥미로운 건 여론이 조 당선자의 학력 위조 논란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점이다. 다른 당선자의 논문 표절 등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야당도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 조 당선자는 이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19대 국회에서 탈북자 문제는 물론 북한 인권법을 포함한 북한 민주화 현안에 신명을 바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여의도로 갈 필요가 없다. 장관급 아버지를 둔 든든한 배경에 김일성대 교수·박사 자리가 보장된 미래를 등지고 35세 나이에 망명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조명철은 국내 탈북자뿐 아니라 2400만 명의 북한 주민을 대표하는 ‘지역구 의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조명철을 거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