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아파트 붐 타고 '옷걸이' 공장 열어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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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중곡동 가구거리에 있는 왕자행거 전시장에서 만난 백운환(62) 왕자산업 대표. 손을 얹고 있는 제품은 선반과 바퀴가 달린 이동식 행거다.

35년째 옷걸이 행거를 만드는 왕자산업의 백운환(62) 대표는 요즘 중국에서 올 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 내 220개 점포를 갖고 있는 최대 할인점 ‘알티마트’의 사장이다. 그가 구매 상담차 다음 달 5일 직접 왕자산업을 찾아오는 것. 백 대표는 “알티마트는 이미 우리 제품 약 5억원어치를 주문했다”며 “이번 상담을 통해 중국 시장에서 더 잘 통할 제품을 찾아내면 보다 큰 규모로 납품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회사는 요즘 이렇게 해외에서 제품을 알고 찾아오는 바이어를 통해 수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백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30년간은 해외시장 공략에 번번이 실패했다”며 “수출을 하게 된 것은 대형마트와의 인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백 대표가 행거사업에 뛰어든 것은 1978년이다. 국립교향악단에서 관악기인 프렌치호른을 불다 행거 공장을 차렸다. 그는 “아파트가 늘면 장롱이 퇴출되고 대신 좁은 공간에 옷을 많이 걸어둘 수 있는 행거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사업에 나선 데는 “수출을 해 달러를 벌고 싶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공장을 차렸다. 창업 초에는 순항했다. 국내에서 각종 품질대상을 받았다. 또 기존 어른 키 높이의 고정식 행거를 조립식으로 바꿔 박스 배달을 처음 시도한 것이 히트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수출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제품을 싸들고 미국과 일본 등의 대형마트를 돌았지만 허사였다. “국제무역상품 전문지인 ‘아시아 소시스’ 등에 광고까지 했으나 문의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수출 계약은 우연한 기회에 성사됐다. 왕자산업은 대형마트가 자체 브랜드(PB) 상품 출시 경쟁을 벌이던 2006년 이마트에 납품을 시작했다. 그게 2009년 이마트 매장에서 납품받을 만한 물건이 없는지 조사하던 일본 바이어의 눈에 띄었다.

 이내 수출 협상이 시작됐다. 왕자산업은 수출 3년 만인 지난해 일본 행거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홈쇼핑방송인 ‘도쿄 드림웨어’에서는 지난달 9일 행거제품 1일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14억원어치에 해당하는 2만7000개가 팔렸다. 최근엔 미국과 호주·파라과이 등에도 수출 중이다. 지난해 매출액 320억원 중 35억원이 수출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이마트에 납품하기 전 19명이던 직원은 현재 그 5배인 100명 가까이로 늘었다.

 백 대표는 “대형마트 납품은 기술을 개발해 품질을 높이고 가격은 더 낮추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더 많은 소비자를 대하게 되니 책임감이 높아져 품질에 만전을 기하게 됐다는 얘기다.

 대형마트에 납품한 뒤 제품 역시 다양화됐다. 원터치 버튼만 누르면 높낮이를 조정할 수 있는 상품이 나왔고, 원룸에 사는 싱글족을 겨냥해 좁은 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행거도 출시했다.

 백 대표는 “브랜드 인지도와 마케팅 능력이 떨어지는 중기들에 대형마트 납품은 수출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선진국 유통업체 바이어들이 국내 대형마트에 수시로 들러 괜찮은 제품이 없는지 살펴보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띌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왕자산업처럼 대형마트를 거쳐 해외 수출에 성공한 중기가 적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 2월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에 납품 중인 중기 200개를 조사한 결과 29%가 PB상품 납품을 계기로 해외유통업체로의 수출길을 뚫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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