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도 대선 주자들은 벼랑 끝까지 ‘룰 싸움’을 벌이며 대치했다. 그만큼 경선 룰은 예민한 사항이다. 2007년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당초 2005년 당 혁신위가 만든 대로 ‘6월에 선거인단 4만여 명’으로 치르도록 돼 있었다. 4만여 명의 선거인단 구성 비율은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 국민 30%, 여론조사 20%였다.
그런데 그해 2월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이 선거인단을 37만 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선거인단을 늘려 박근혜 전 대표의 당 조직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였다.
박 전 대표 측은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고 버텼다. 가장 열세였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경선을 추석 이후로 늦추고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완전국민경선제를 주장했다. 김문수 현 경기지사의 주장과 비슷하다.
세 후보는 이 문제로 한 달 이상 갈등을 빚었다. 강재섭 당시 당 대표가 ‘8월 경선-선거인단 20만 명’의 중재안을 만들어 이명박·박근혜 후보 측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손 전 지사는 자신이 막판에 수정 제안한 ‘9월 경선-선거인단 40만 명’안마저 거부되자 결국 탈당을 선택,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건너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손 전 지사가 레이스에서 이탈한 뒤에도 이명박·박근혜 후보 측은 룰의 세부 조항을 놓고 계속 충돌을 빚었다.
특히 ‘여론조사 20%’ 반영 방식을 놓고 이 후보 측은 선거인 수 20만 명의 20%인 4만 표를 여론조사에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선거인단 정원 20만 명이 아니라 실제 투표한 인원의 20%를 조사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경선 방식도 박 전 대표 측은 전국 순회 경선을 통해 ‘박근혜 바람’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 전 시장 측은 전국 동시경선으로 이변 가능성을 차단하려 했다. 결국 여론조사 반영 방식은 박 전 대표 측 주장이 관철됐지만 경선 방식은 이 전 시장이 원하던 대로 동시경선으로 절충하면서 가까스로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