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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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의 신선함도 이제 조금씩 선도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벌써 열흘이 지났으니까요. 지난 한햇동안 우리는 무슨 책을 보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무엇보다 닷컴 열풍과 닷컴 쇼크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동시에 겪어야 했던 올해는 여러 가지로 기복이 컸던 것 같군요.

한햇동안의 독서계를 정리하는 건 이 즈음 책을 보는 독자들에게 의례적인 절차입니다. 그런 의례적 절차를 거치며, 꼭 보았어야 했지만,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책들을 하나 둘 되 읽어볼 수 있는 것도 독서 매니아들에게 주어진 '책 읽기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체 경기의 불황 속에서도 출판 시장의 매출액은 지난 해에 비해 약 5% 신장했다고 내다보는 게 관계자들의 전망입니다. 특히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가시고기' '국화꽃 향기' 등은 올해에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들이 아닌가 합니다.

# 전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된 초밀리언 셀러
- '해리포터'시리즈(조앤 롤링 지음, 문학수첩 펴냄) 시리즈

어른이고 아이고를 가리지 않고, 올해 가장 많은 독자를 얻어낸 것은 단연 조엔 K. 롤링의 '해리 포터'시리즈입니다. 전세계 35개 언어로 옮겨져 3천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이 책은 한국에서도 70만부 이상을 팔았다고 합니다. 워너브라더스사에 의해 곧 영화화될 예정이라지요.

쉽고 짧은 문장, 대화체 중심의 서술, 직선적 구성, 평면적 캐릭터 등 동화의 일반적 규칙에 충실한 이 책은 모더니즘 미학의 관점에서는 약점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일반 독자를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한 결정적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단순한 성장 소설에 불과하다거나, 또 대중문화의 스릴러 양식을 어린이 문학에 직접 도입한 점 등 평가에 인색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독자들이 그렇게 많이 몰리는 데에는 이같은 논리적인 까닭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보다 중요한 요소가 있을 겁니다.

#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라니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샤론 레흐트 함께 지음,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펴냄)

물론 좋은 책은 시절의 흐름과 무관하게 나타나고, 그렇게 나타난 책이 소리 소문 없이 많은 독자들에게 자동으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만, 시대의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지고, 널리 퍼지는 책들도 적지 않습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필경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반영하는 책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이야기되는 시기에 맞추어 나온 이 책은 특히 우리 사회의 샐러리맨들에게 금방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샐러리맨들의 생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이 책은 한 동안 샐러리맨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자리라면 반드시 화제로 등장하곤 했지요.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부자 되는 법을 짚어냈는데, 말이야 모두 옳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지은이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삶의 모든 것을 경제적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유효성이 남아 있는 책입니다.

# 21세기 독서시장이 왜 멜로 판인가
- '가시고기'(조창인 지음, 밝은세상 펴냄) 와 '국화꽃 향기'(김하인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소설 책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일이 흔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만큼 깊은 감상에 빠져들고 싶어 소설책을 찾았던 시절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른바 멜로의 시대이지요. 소설 뿐 아니라 영화도 그랬어요. '러브스토리'가 그러했고, '선샤인' '스잔나' 등의 영화가 모두 눈물을 뽑아내는 영화들이었지요.

지금 이런 멜로를 들먹이는 건 올해 우리 독서 시장을 강타한 두 권의 멜로 소설 때문입니다. 이 두 권의 소설에도 어김없이 불치의 병을 앓고 죽어가는 애처로운 사연이 있습니다. '가시고기'에서는 아들이, '국화꽃 향기'에서는 아내가 죽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간절히 지키는 아버지와 남편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눈물 샘을 자극하는 최루 폭탄이 붙어 있습니다.

문단에서는 이 두 소설을 '통속'이라 하여 낮추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올 가을 독서 시장을 풍요롭게 한 것으로는 문단의 다른 어떤 작품들 보다 큰 값을 한 책입니다.

# 영어 공부 책도 베스트셀러가 된다
-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정찬용 지음, 사회평론 펴냄)

실용서가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르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것도 영어 학습서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지난해 7월에 출간한 뒤 지금까지 90만부 이상을 판 밀리언 셀러인 셈입니다.

이 책은 제목의 묘한 뉴앙스에서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영어 공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달리는 걸 보면 약이 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세계 공용어가 되다시피 한 영어 공부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정말 영어공부를 절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영어를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만 있다면 그건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되고도 남음이 있지요.

이 책의 판매에는 이 출판사의 홈페이지(http://www.ksenglish.com)의 역할도 컸습니다. 독자와 저자, 혹은 독자와 독자 간의 쌍방향 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이 책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힘이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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