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밤낚시 즐긴다는 女부장 말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남자들에게 회사 일과 가정 일을 모두 하라고 해봐라. 다 도망갈 거다, 나부터.”

 이건희(70·사진) 삼성전자 회장의 말에 참석자들이 빙긋 웃었다. 19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42층에 있는 이 회장의 집무실로 여성 임직원을 초대한 오찬 자리에서다. 이 회장은 “여성에게는 남자가 갖지 못하는 숨겨진 힘이 있다. 어떻게 회사 일과 가정 일을 다 해내는가”라고 여성 임직원들을 격려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8월 이후 8개월 만에 열린 여성 임직원과의 오찬에는 지난해 말 정기 인사 때 승진한 삼성전자·제일기획·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상무부터 과장까지 여성 임직원 9명이 참석했다.

 이 회장은 여성들이 일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는 데 따른 어려움, 직장에서 성취를 이뤄가는 데 대한 자부심, 동료·상사·후배와의 관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경청했다. 중간중간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여성에 대해 “아이를 열 달 동안 (배 속에) 키워서 낳는 힘이 있고, (출산의) 고통을 거뜬히 이겨낸다. 모성애는 부성애와는 다른데, 이게 보통 힘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는 것 같다”면서 “그래서 회장이 되고 나서 여성 인재를 채용하라, 육성하라, 보육 시설을 확충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면 회사와 나라에 손해”라면서 “삼성은 여성 인력이 발휘해주는 능력의 덕을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수한 후배들에게 삼성에 와서 일하라고 말해주기 바란다.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을 거다”라고 자신했다. 그는 “앞으로 여성 인력을 더욱 중시해, 지금 30% 정도인 여성 채용 비율을 앞으로 더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격의 없는 대화도 오갔다. 2년 연속 발탁 승진한 미혼의 신모 차장은 “주위에서 ‘(결혼) 속도 위반을 해도 될까말까한데 승격만 속도 위반을 해서 어쩌느냐’는 축하와 걱정을 동시에 받았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신 차장은 여성의 강점인 소프트한 소통 능력과 유연성을 이야기하며 “남자들은 사장님을 대하기 힘들어 하는데, 저는 편하게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자 선배들이 사장님께 말하기 힘든 걸 저한테 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바로 “사장이 누구냐”고 물으면서 또 웃음이 터졌다. 미혼의 김모 부장은 “일이 참 재미있고 취미 생활도 즐겁게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취미로 밤낚시를 즐긴다고 하자 이 회장은 “취미가 참 남성적”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삼성에서 남녀 구별 없이 능력껏 일하고 평가해줘서 그런지, 남녀의 경계를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참석자들은 “삼성이 잘 되는 것은 여성 인력을 차별하지 않고 잘 해줘서 그런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자녀 이야기도 나왔다. 박모 상무는 “지난해 승진했을 때 아들이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줘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유모 차장은 “아이가 아직 어린데, 얼마 전 용돈을 내밀며 ‘이 돈 줄 테니까 회사 나가지 말라’고 했을 땐 가슴이 아팠다. 아이가 빨리 커서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자녀를 사내 어린이집에 맡기는 직원에게 보육 교사와 프로그램, 시설 수준이 어떤지 묻고 비용은 얼마나 부담하는지 세세하게 물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생산라인 고졸 사원으로 입사해 생산직 여직원 중 처음으로 차장으로 승진한 이모 차장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 차장이 “현장 생산직 여성들에게 학력의 벽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 (승진이) 너무나 기쁘다”고 말하자 이 회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빨리 부장도 되고, 상무도 돼야지”라고 격려했다. 이 차장은 “그러잖아도 후배들이 빨리 임원이 돼서 우리 입장도 잘 반영해 달라고 응원해준다”고 전하자 이 회장은 다시 “내가 꼭 기억하고 있겠다”고 말했다.

 오찬은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40분가량 진행됐다. 이 회장은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듣고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여성들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사회가 인정해주고 키워주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을 회장께서 늘 갖고 계신다”면서 “그래서 현장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을 만나면 흐뭇해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삼성전자 회장
[現]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1942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