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기다리는 조정은 오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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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미국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가 “중국 경제의 급락이 머지않았다”는 보고서를 냈던 게 2003년이다. 당시 영국 BBC도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은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듬해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중국 경제 낙관론에 “브레이크를 밟을 시점”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2008년과 2009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중국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전망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 경제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0.9%의 고속 성장을 지속했다. 경제 성장이나 주가 상승이 한창 진행될 때는 기존의 상승 흐름이 곧 꺾일 것이라는 예언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조정, 준비된 조정은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이 시장의 속성이다. 진짜 조정은 비관론자가 사라진 뒤 장밋빛 전망만 쏟아질 때 찾아오곤 한다. 그렇다면 올해 또다시 제기되고 있는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중국 경제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7.5%로 낮추면서 7년간 유지한 ‘바오바(保八· 8% 성장률 목표)’ 정책을 포기한 데다, 올해 1분기 성장률도 8.1%로 5분기 연속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부동산 가격 급락과 이에 따른 은행 부실이 지목되고 있는 것도 10여 년 전과 마찬가지다.

 20세기 내내 중국에 대해 ‘가난하고 인구만 많은 나라’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서방 등 외부 세계가 중국 경제의 폭발적 성장을 쉽게 수긍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경제통계학자 앵거스 매디슨에 따르면 지난 2000여 년 동안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서방 세계보다 작았던 때는 최근 140여 년이 유일하다. 그는 “송나라 초기인 서기 1000년의 중국 경제규모는 유럽 30개 국가의 2.5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최근 30여 년간 중국 경제가 약진한 것이 ‘거품’이 아닌 ‘과거 수준의 회복 과정’이라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굳이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1000년 전 역사를 되짚지 않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2 국가로서 중국의 위상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에 이미 일본을 추월해 세계 2위로 올라섰다. 구매력 기준으로는 2016년 미국까지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의 덩치가 커지는 양적 측면뿐 아니라 질적 측면, 즉 산업 고도화에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중국이 연구개발(R&D)에 쏟은 금액은 1540억 달러로 추정된다. 미국과 비교하면 40% 수준이지만 일본의 1440억 달러를 넘어선 세계 2위다. 중국의 미국 유학생 수도 16만여 명으로 전체 미국 유학생의 18.5%를 차지하고 있다. 금전적 투자와 인적자원 투자가 병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국 경제의 그림자는 어떤 부분일까. 부동산 거품 붕괴와 은행 부실 가능성에만 주목하는 것은 너무 눈앞에 드러난 문제만 보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보려면 고성장기를 거친 후발 국가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 바로 ‘중진국의 덫’이다. 값싼 노동력을 통해 일정 수준까지는 경제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회구성원의 눈높이가 높아지는데 언제까지나 저임금에 기댈 순 없는 노릇이다. “중국의 경쟁 우위는 저임금과 환경보존에 대한 무시에서 나온 것”이란 날 선 비판은 바로 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서구의 경제성장 과정과 차별화된다는 이른바 ‘중국식 모델’이 앞으로 계속 작동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향후 성장단계에서 기술 발달이나 제품의 품질향상 속도보다 임금상승 속도가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대 교수의 지적처럼 17세기의 네덜란드, 20세기 초반의 미국, 1990년대 초반의 일본, 1997년의 한국과 같이 중국도 경제 성장 과정에서 예외 없이 겪게 되는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인류의 경제사에서 차지하고 있던 위상과 중국인의 피에 흐르고 있는 ‘상인 DNA’를 감안하면 중국 경제는 앞으로 수많은 파도를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한편으론 경쟁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협력할 수밖에 없다. 중국 경제에 대한 맹목적 낙관론도 문제지만, 중국의 쇠락을 보고 싶어 하는 시기 어린 시선에도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중국의 부상이라는 큰 추세를 냉정하게 읽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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