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뭐든 바꿔보는 호기심녀 … 비닐로 짠 식탁매트로 대박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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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매트를 이용한 식탁은 풀밭 위의 식사를 연상시킬 만큼 산뜻한 분위기를 낸다. [사진 칠리위치]

획기적인 아이디어란, 알고 보면 출발은 간단하다.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남과는 다르게 ‘뒤집어 보는 눈’이다. 식탁 매트 브랜드 ‘칠리위치’의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샌디 칠리위치(61)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식탁 매트는 천 소재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뒤집고, 야외용 가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비닐로 식탁 매트를 만들어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장본인이다. 지난달 27일 방한한 샌디 칠리위치를 서울 논현동에 있는 리빙 편집숍 더플레이스에서 만났다. 매트라는 평범한 주방용품 하나로 성공한 비결을 묻자 그는 “호기심 많은 성격 때문에 재미처럼 시작한 일들이 행운의 사업 아이디어가 됐다”고 말했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국 신발 염색해 신었더니 “어디서 샀니”

탄력있는 천을 밑으로 잡아당겨 오목한 그릇 형태로 만든 ‘레이보울’. [사진 칠리위치]

“난 늘 ‘바꿔보기’를 좋아했어요. 기존에 쓰이던 방식 말고 색다르게 사용해보면 어떨까, 상상하는 걸 좋아했죠.”

 칠리위치의 ‘행운을 부르는 호기심’의 역사는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물일곱 살이던 칠리위치는 주얼리 디자이너로 일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조각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그 방면에 남다른 감각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죠.”

 뉴욕의 중국인 상점에서 산 신발도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발레슈즈처럼 생겼는데 히피족 예술가들이 즐겨 신었죠.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검은색밖에 없는 거예요.” 미술 학교 선생이던 친구와 함께 검은색 신발을 탈색한 뒤 빨강·노랑 염색을 했다. 그저 남들과는 다른 색깔의 신발을 신고 싶어서 한 일인데 “어디서 샀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았다. 재미 삼아 한 일이 사업으로 커졌다. “중국에선 장례식 때 똑같이 생긴 하얀 신발을 신는다더군요. 그걸 2만 켤레 수입해 다양한 색으로 염색해 팔았죠.”

 당시 ‘보그’를 비롯한 패션지에서 앞다투어 ‘새로운 패션화’로 소개했다. 내친김에 검은색밖에는 대안이 없었던 스타킹 염색도 시작했다. ‘휴(HUE)’라고 브랜드 이름을 짓고 법인도 설립했다. 칠리위치는 “호기심이 사업으로 커진 데는 아버지의 조언이 컸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피혁을 수입하는 사업가였다.

천으로 그릇 만든 ‘레이보울’ 디자인상

레이스 느낌의 매트는 식탁뿐 아니라 화장대, 거실 테이블 등에 장식품을 올려놓을 때도 잘 어울린다. [사진 칠리위치]

친구와 둘이 세탁기 넉 대로 시작한 사업은 꾸준히 성장했고, 칠리위치는 91년 회사를 4000만 달러(약 456억원)에 매각했다. 뭔가 다른 종류의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94년 둘째 아들을 낳은 뒤에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주방용품 아이디어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이때 탄생한 게 탄력 있는 천을 이용한 그릇 ‘레이보울’이다. 철로 만든 뼈대에 옷을 입히듯 천을 씌우고 바닥에 달린 클립을 당겨 뼈대에 고정시키면 오목한 그릇 형태가 만들어진다. “언제든 더러워지면 천만 벗겨서 세탁할 수 있고 색깔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죠.” 칠리위치는 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레이보울을 생산했다. 레이보울은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상(99년) 등 각종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모마(뉴욕현대미술관)숍을 비롯한 여러 디자인 숍을 통해 판매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실내 매트·휴대폰케이스·가방도 내놔

반짝이는 은색 매트는 특별한 날에 사용하는 금빛 샴페인, 자줏빛 와인과 잘 어울린다. [사진 칠리위치]

“99년에 야외용 소풍 그릇을 고민하다가 흥미로운 소재를 발견했어요. 야외용 가구를 만들 때 쓰는 비닐이었죠. 이걸 실처럼 얇게 만들어서 직물을 짜듯 엮으면 쓸모가 많겠다 싶었죠.” 그렇게 만들어진 게 지금의 칠리위치 매트 제품들이다. “실로 원단을 짜듯 여러 문양과 색을 만들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비닐 소재 특유의 광택도 살릴 수 있고, 더러운 게 묻어도 물로 씻어내면 금세 깨끗해지죠.”

 투명한 셀로판지를 두 장 겹쳤을 때처럼 색깔이 다른 두 개의 매트를 겹쳐 놓으면 색다른 조합의 색깔이 만들어진다. 칠리위치는 “손자의 손자에게까지 물려줄 만큼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라고 했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매트 시판을 시작한 칠리위치는 2004년 건축가였던 남편 조 술탄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식탁뿐 아니라 실내 여러 곳에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의 매트로 생산 범위를 넓혔다. 현재는 휴대전화 케이스와 가방도 만들고 있다.

 “예전에 뉴욕의 고급 식당들을 가보면 실내 풍경이 똑같았어요. 식탁마다 펼쳐진 하얀 식탁보 때문이었죠. 그러던 식당들이 하얀 식탁보를 걷어내고 다양한 색깔의 매트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개성을 표현하도록 만든 데 자부심을 느껴요.”

특별한 날 식탁엔 은색 매트가 어울려요
칠리위치가 제안하는 매트 활용법

‘칠리위치’ 창립자 샌디 칠리위치.

1 여러 가지 색깔을 사용해라

가족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서 꼭 같은 색깔의 매트를 세트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비슷한 계열 또는 보색 계열의 매트를 골고루 구입해 퍼즐 맞추듯 배열하면 주방과 식탁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2 같은 색이라도 짜임이 다른 것을 여럿 활용하라

비슷한 색깔이라도 짜임이 다른 매트가 많다. 이것을 골고루 활용하면 식탁 위 색깔은 통일하면서도 느낌은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특히 짜임이 다른 매트 두 개를 어슷하게 겹쳐 놓으면 겹쳐진 부분의 색깔 농도가 짙어져 색다른 장식 효과가 나타난다.

3 은색 매트, 금빛 샴페인과 잘 어울려

손님을 초대했을 때 등 특별한 식사 시간에 어떤 매트를 쓸지 고민한다면 ‘은색’을 추천한다. 화려한 보석을 식탁에 깐 듯 화려함이 살아난다. 또 투명 유리잔에 담긴 연한 금색 샴페인과 화이트 와인, 진한 자줏빛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4 꼭 한 가지만 구입한다면 연두색이 우선이다

풀밭에서 즐기는 식탁을 연상하면 쉽다. 연두색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흰색 그릇들과도 잘 어울린다. 식탁 색깔로 가장 많이 쓰이는 나무색·흰색·검은색·은색 등과도 무난하게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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