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악기 서양식 개량

중앙일보

입력

"이게 무슨 악기예요?"
"이것도 가야금이예요?"

어느 피아니스트가 덩치 큰 개량 가야금을 안고 있는 연주자의 사진을 보며 물었다. 기존의 12현 가야금에 줄을 보태 음역을 넓히고, 명주실 대신 나일론 줄을 쓰고, 공명통까지 확대한 개량 가야금은 17현부터 22현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악기개량의 결과로 가야금은 서양의 평균율에 근접한 음정을 낼 수 있게 됐다.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하프 같은 음색으로 파헬벨의 '캐논' 을 연주하는 가야금에서 친근감을 느낀다. 학교교육을 통해 서양음악과 평균율에 대한 감수성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기 개량으로 우리 고유의 음색이나 연주법이 사라지고 서양식 평균율에 맞춰 연주하는 경향이 많다. 서양음악 전공자들도 이러한 현상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중국과 북한은 일찍이 전통악기를 개량해 서양음악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태평소가 클라리넷으로, 심지어 해금은 콘트라베이스로 변형됐고 음정은 평균율로 바뀌었다.

이들은 전통악기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을 연주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서양악기에 접근할수록 발전된 음악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국내 음악가 중에는 중국과 북한 수준까지 악기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외국의 음악학자들은 이러한 악기 개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동양의 독특한 음색, 평균율과는 다른 모호한 음정이야말로 동양음악의 매력이라 여겼는데, 그 매력을 스스로 저버리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지난해 몽골에서 열린 음악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 만난 유럽의 한 음악가는 거문고의 신비로운 음색이 매우 인상적인데 비해 몽골의 마두금은 비올라와 비슷해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은 1964년 국악기 개량 사업에 착수했다. 이후 아쟁.가야금.해금.피리.태평소 등이 개량됐으나 대부분은 기존의 악기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악기 개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작품이나 연주법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기존의 꽹과리의 음량을 다양화하여 악기를 개량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기존의 시끄러운 꽹과리를 선호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고 다양한 음악을 위해서 악기개량은 필요하다. 기존 악기의 불합리성도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악기개량만이 능사는 아니다. 기존의 악기로 연주하는 전통적인 요소도 원류를 간직한 채 전승돼야 한다.

기존의 악기가 개량악기로 완전히 대체되는 이웃나라와 달리 여전히 전통악기가 사랑받으면서 개량악기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것은 그래서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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