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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 도전 ‘아메리칸 드림’이룬 40년 … ‘사람이 재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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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람이죠. 직원이든, 이웃이든 다른 사람들에 필요한 걸 채워주는게 몸에 배면 그게 나에게 돌아오곤 합니다.”

 미국에서 기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 비결을 묻자 재미교포 장정헌(70·사진) 유니은행 이사회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장 회장은 자서전격인 『액션 테이커』 출간을 계기로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이 책에는 40여 년 미국생활에서 성공의 이면에 겪은 고통과 어려움이 상세히 담겼다. 그는 “세탁소 하던 시절이 가장 어려웠다”고 돌이켰다. 본래 목재수입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1970년대 초 미국 지사장으로 파견됐다. 하지만 몇 년 뒤 본사가 부도났다. 두 딸과 먹고 살기 위해 아내와 밤낮을 바꿔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아내가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을 겪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처음 시작한 사업이 세탁소다.

 “매상이 월 7000달러라고 들었는데 인수하고 보니 4000달러뿐이었어요. 기존 손님도 주인이 유대인에서 동양인으로 바뀌었다니까 그냥 돌아가곤 했죠.” 게다가 빈민가에 새로 얻은 집은 바퀴벌레가 들끓었다. 가장으로서 자괴감에 그는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목숨을 끊을 궁리까지 했다. “아내와 둘이서 밤새 종이에 써가면서 손님들 이름을 외웠어요. 자동차가 들어오는 게 보이면 바로 서비스를 준비하고 손님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죠. ‘한번 맡겨달라, 옷에 문제가 생기면 새로 사주겠다, 세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을 안 받겠다’ 하면서요.” 주변 세탁소도 찾아 다녔다. 갈 때마다 먹을 것, 마실 것을 들고 갔다. 일손이 부족하면 다림질도 도왔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세탁소 주인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누구에게서나 배울 게 있거든요. 세탁소마다 장단점을 배우려 했죠.”

 세탁소의 성공을 기반으로 폐지수집소, 염색공장 등을 차례로 인수해 무역업·제조업으로 사업을 넓혔다. 투자회사까지 한때는 8개에 달하는 기업을 운영했다. 그 중 염색업체 USDF는 캘리포니아주 최대규모로 성장해 미국의 세계적 의류회사 아메리칸 어패럴에 매각됐다. 현재 제조업은 대부분 정리했다. 2006년 시애틀에 창립한 유니은행 등 금융업에 주력하고 있다.

 성공한 비결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전문경영인에게 인사권 등을 전부 맡깁니다. 수십년 경력의 사장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창의력과 의욕을 꺾는 겁니다. 사장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게 회장인 저의 일이죠.”

 이런 와중에도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던 폐품 재활용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직접 나섰다. 무엇보다 직원들과 신뢰를 쌓고 사기를 높이는 데 힘썼다. 회사가 흑자를 내자 지체없이 보너스를 지급했다.

 책 제목 ‘액션 테이커’는 그의 이런 행동력을 보고 후임 사장이 붙인 별명이다. “매니저들과 회의하다 이게 회사에 유리하냐, 직원들에 유리하냐를 따지면 저는 직원에 유리하게 결정합니다. 직원들의 신뢰를 높이는 일들은 실상 큰 돈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는 책 출간 뒤의 일화를 소개했다. “제가 공항에서 자주 이용하는 리무진 회사에 차를 불러달라고 전화했더니 담당직원이 한참 말이 없어요. ‘회장님이 그런 고생을 하신 줄 처음 알았다’고 울먹이더군요. 남의 나라 살면서 고생 안 한 사람 있나요. 다만 이민 1세대들의 어려웠던 삶이 잊혀지지 않게 하자는 제 안에 책을 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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