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 신진원-대전시티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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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

청운의 프로입성. 신인왕 등극. 기억하기 싫은 그해 겨울. 눈물로 범벅이 된 재활훈련. 그리고 복귀. 도움왕 도전. 신진원의 길지 않은 축구여정은 이렇듯 어지러이 흘러왔다.

98년 12월 교통사고로 얼굴과 두 다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선수로서는 물론, 정상적인 생활인의 삶마저도 잃을 뻔했던 그가 당당하게 그라운드에 복귀해 '제2 인생'을 걷고 있다. 삼복 더위가 끝자락을 보인다는 말복(末伏). 8월10일 대전시티즌 숙소에서 그를 만났다.

기억하기 싫은 그해 겨울

한마디로 잘 나가는 선수였다. 97년 대전시티즌 창단멤버로 프로무대에 첫 발을 디딘 신진원에게 프로는 무한한 꿈을 펼칠 수 있는 엘도라도. 입단 첫해 팀 내 최다골(6골)을 기록하며 일생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주위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프로 2년차 신진원의 기량은 점점 더 무르익어 갔다. 플레이메이커로서 날카로운 패스워크를 이용, 동료선수들에게 득점 찬스를 열었고 스스로도 골문을 위협하는 슈팅력으로 상대구단으로부터 '경계대상 1호'로 꼽혔다. 한창 인기를 구가하며 98올스타전 선수로도 선발됐다.

그러나 위기는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찾아왔다. 98시즌을 마친 12월18일.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집 부근서 차를 몰고 가다 운전 미숙으로 중앙선을 넘었고 마주 오던 지프차와 충돌하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유리 조각 파편과 혈흔.

운전석 문을 열고 나오려했으나 열리지 않아 보조석 문을 통해 간신히 몸을 빼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지난 일이 꿈만 같았다.

현실은 참으로 냉혹했다. 축구만을 위해 달려온 그에게 그해 겨울 교통사고는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주위서는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그의 눈에는 깊은 슬픔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눈물로 범벅이 된 병상일기

이대로 주저앉고 마는 것인가. 왼쪽 무릎 인대는 끊어졌고 오른쪽 무릎 뼈는 골절되고 말았다. 얼굴에도 오른쪽 귀밑서부터 턱 아래까지 유리 파편이 박혀 자칫 잘못했으면 생명까지도 위험할 뻔했다.

축구선수에게 두 다리는 무엇인가. 생명 그 자체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담당의사는 선수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거듭해 당부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어머니 서성순(53)씨와 올 겨울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주연(24)씨의 사랑과 지극 정성이 그를 다시금 일어나게 했다.

어머니는 두 다리를 모두 다쳐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아들의 대소변을 받았다. 한시도 아들 곁을 떠나는 법이 없을 정도로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다. 또 당시 대전MBC 리포터로 활동하던 이주연씨는 집(인천)과 병원(서울 경희대 의료원), 일터를 오가며 신진원을 간호했다. 그는 다시금 재기하고 있었다.

지난해 2월2일 퇴원하고 얼마 후 물리치료와 재활훈련을 위해 잠실 한마음병원을 찾았다. 그 곳은 팀 동료 김정수가 왼쪽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를 악물었다. 축구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뼈 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을 참아내며 재활의지를 불태웠다. 치료부위는 예상외로 빨리 아물었고 6월말 가벼운 조깅을 전제로 다시 그라운드에 다시 설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액체가 눈가에 맺혔다.

그리곤 8월21일 전남과의 어웨이 경기서 부상 후 첫 출전기회를 얻었다. 아직까지 몸상태가 정상은 아니었지만 '돌아왔다'는 생각에 그날 경기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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