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 속 닷컴 짝짓기 "피차 도움 안돼"

중앙일보

입력

온라인 배달 서비스업체인 코즈모닷컴과 경쟁사인 어번페치닷컴 경영진은 지난 여름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스타벅스 커피 체인점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양사의 인수.합병(M&A)을 논의하는 첫 자리였다.

그동안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이들의 얼굴에는 겸연쩍은 표정이 역력했으나 대화 내용은 진지했다.

이들은 수익 기반이 악화하자 '출혈 경쟁을 자제하고 인원 감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자' 는 대원칙에 얼마 전 동의한 상태였다.

양사의 M&A 방침에는 양사 투자자들도 모두 지지 입장이었다. 그러나 양사 합병은 지난달 초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코즈모닷컴은 "경영 전략에 대한 견해 차이로 합병 협상이 실패했다" 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은 실사(實査)결과 어번페치닷컴의 손실액이 예상보다 커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번페치닷컴은 협상 실패에 따른 투자자들의 외면과 곤두박질치는 주가로 결국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배달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자금줄이 마르고 수익을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닷컴기업들이 늘면서 동종업체끼리 생존을 위한 짝짓기가 성행하고 있다.

'제살 깎아먹기' 식의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고 인력.설비 교류 등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같은 M&A는 설령 성공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합병에 뛰어든 업체들이 피차 돈벌이에 큰 도움이 안되는 고만고만한 수익 모델을 갖고 있어 경쟁력 제고에 별 도움이 안되는 데다, 협상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조금이라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자사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이같은 '적과의 동침' 이 닷컴업체들에 폭탄이 돼 되돌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넷으로 애완동물용 상품을 판매하는 페츠닷컴은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다 결국 이달 초 사이트를 폐쇄했다. 문을 닫은 데에는 합병 후유증도 한몫 했다.

페츠닷컴은 지난 6월 경쟁업체인 펫스토어닷컴을 인수했지만 그토록 바라던 돈보따리는 만질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당시 "기본적으로 애완동물 시장이 협소하고 반짝이는 수익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합병만 한다고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겠느냐" 며 펫스토어닷컴 인수를 반대했었다.

자금이 소진돼 곤경에 빠진 페츠닷컴은 이번에는 "우리 회사를 사달라" 며 인수자 물색에 나섰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페츠닷컴의 지분 30%를 보유한 아마존닷컴마저도 투자 가치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 회사에 등을 돌렸다.

위성위치추적 시스템(GPS)까지 갖춘 식료품 배달업체 웹밴은 지난 6월 12억달러의 거금을 들여 경쟁사인 홈그로서를 인수했으나 오히려 주가가 폭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주가는 합병 당시(3.75달러)의 절반인 1.06달러 수준이다.

흔들리는 닷컴기업들을 먹이감으로 여기고 M&A를 악용해 이익금을 챙기려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일부 벤처 캐피털이나 은행, 벌처펀드(부실기업 자산을 싼 값에 사들여 경영을 호전시킨 뒤 고가에 되팔아 차익을 내는 투자자금)들은 닷컴업체들을 부추겨 전망없는 M&A를 성사시킨 뒤 빠져나가기도 한다.

한편 '굴뚝기업' 들도 시세가 바닥까지 내려간 닷컴업체들을 인수할 경우 사이버 공간이라는 새로운 사업영역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헐값 M&A' 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올 봄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M&A 자금으로 5천만달러를 써버려 기력이 다한 글로스닷컴은 대기업인 에스티 로더에 결국 인수되고 말았다.

인베스코 펀드그룹의 애널리스트인 톰 마헤르는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닷컴업체끼리 물리적으로 통합한다고 해서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며 "상호간에 뛰어난 수익모델을 창출해내는 등 근본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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