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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정치의 건강한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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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종교 담당 기자인데도 정치 지도자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접했다기보다는 각종 종교 행사에 참석한 그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테지만. 올해는 특히 선거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당장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4·11 총선 공식 선거운동일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불교 조계종 최고 어른인 진제(眞際) 종정(宗正)의 추대법회에 참석했다. 물론 현장에서 박 위원장을 봤다. 앞서 3월 8일에는 대통령이 참가한 개신교 국가조찬기도회가 있었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기도회 인도자의 제안에 따라 무릎을 꿇었던 터라 올해는 어떤지 챙겨봐야 했다. 보수 기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회장 선출을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자기 코가 석 자인데도 정치인들의 사무실 내방 소식을 꼬박꼬박 e-메일로 전한다.

 정치인의 종교 행사 참가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이 나라의 헌법 20조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을 명시하고 있지만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는 내용 또한 분명히 하고 있다. 정치인도 신앙에 따라 종교 행사에 참석할 권리가 있다. 설령 자신이 믿는 종교의 행사가 아니더라도 참가할 수 있다. 표가 있는 곳에 정치인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추대법회나 국가조찬기도회 같은 행사는 수백, 수천 유권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력 종교인 수백 명이 모이는 자리 아닌가.

 하지만 정치와 종교의 ‘합석(合席)’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단순한 합석이 아닌 유착(癒着)을 경계한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종교 행사에 왔어야 마땅할 정치인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괘씸해하는 종교인이 있다면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권위주의적인지 아닌지. 그만큼 합석과 유착의 경계는 아슬아슬하고 내면적이다.

 정치와 종교는 역사적으로 힘든 싸움을 해왔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정교일치에서 정치가 떨어져나가면서 종교는 차츰 세속화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980∼90년대 들어 종교는 다시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면 전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탈사유화(deprivatization of religion)’다. 이런 흐름을 두고 “새롭게 종교에 흡수된 의식 있는 신자들의 요구에 따라 종교인들이 등 떠밀려 나타난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

 종교와 정치의 건강한 관계와 관련해 최근 눈길을 끈 사례가 있다. 종교의 선거 참여 캠페인이다. 조계종은 ‘선거 참여가 보살행입니다’라는 제목의 30쪽짜리 소책자 1만8000부, 같은 내용의 리플릿 22만 부를 찍어 지난달 하순부터 전국의 신도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조계종의 선거 참여 캠페인은 사상 처음이다. 개신교 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도 “특정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신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정책 투표를 강조하는 내용의 리플릿을 찍었다. 백번 옳은 종교적 압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