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본모습 재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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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악단에 갓 입단한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 앙상블과 팀웍을 익혀나갈 때 베토벤이 남긴 9개의 교향곡만큼 좋은 교과서도 없다.

같은 작곡가의 손을 거친 것이지만 단 한 곡도 비슷한 곡이 없을 만큼 다채로운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데다 최소한의 악기 편성으로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자신의 악기로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베토벤을 어떻게 연주하는지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클래식 레퍼토리의 금자탑으로 우뚝 서 있는 베토벤 교향곡은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세계적인 지휘자.교향악단들이 자주 베토벤 사이클(전곡 연주.녹음) 에 도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89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사임 이후 무려 80명의 연주자가 새로 입단한 베를린필하모닉(음악감독 클라우디오 아바도) 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새로 녹음해 도이체 그라모폰(DG) 레이블로 내놓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베를린필은 카라얀 시절과는 전혀 다른, 젊고 새로운 악기다.

오랜 세월동안 나름대로의 연주 방식을 고집해온 빈필하모닉과도 달리 지휘자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앙상블이다.

베를린필로서는 카라얀과 함께 모노.스테레오.디지털 등 3종의 전곡 녹음을 내놓은 이후 네번째 전곡 음반이고,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88년 빈필하모닉과 디지틀(CD) 로 전곡녹음을 내놓은지 12년만의 재도전이다.

베를린필이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음반은 DG가 새로운 녹음기술이 나올 때마다 내놓는 간판급 상품이다. 이번 새 녹음은 DVD 포맷을 위한 것이다.

'악기' 와 녹음기술만 새로운 게 아니다. 악보도 지금까지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사용해온 1862년 브라이코프 운트 헤르텔사가 출판한 에디션이 아니라 영국의 음악학자 조너선 델마(49) 가 베렌라이터 출판사에서 최근 새로 내놓은 델마 에디션을 사용했다.

5년간의 연구 끝에 지난 6월 제7번 교향곡으로 최종 완결했다.
1백38년만에 새로 편집된 베토벤 교향곡 악보다.

몇해전부터 베를린필.런던심포니 등 세계 유명 교향악단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음표들을 묶고 처리하는 세부적인 방식이나 셈여림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번 녹음의 가장 큰 특징은 초연 당시의 편성을 최대한 존중했다는 점이다.

가령 교향곡 제1, 2, 4, 8번에서는 더블베이스(3) .첼로(4) .비올라(6) .제2바이올린(8) .제1바이올린(10) 등 소규모 편성으로 실내악적인 투명성을 기했다.

19세기 이후 낭만주의자로 채색돼온 베토벤의 음악에서 거품을 제거하는 작업인 셈이다. 악보의 메트로놈 표기보다 더 느리게 처리하는 일반적인 연주방식보다 템포가 빠르다.

그가 빈필과 녹음한 '영웅 교향곡' 은 50분이지만 이번에 녹음한 '영웅' 은 46분 걸린다.

제5, 6, 7, 9번은 베를린 필하모니홀의 실황녹음이며 제1, 2번(필하모니 실내악홀) 과 제3, 8번(필하모니홀) 은 비공개로 소규모 청중 앞에서 녹음한 것이다.

4번 교향곡을 제외한 모든 곡이 실황연주의 생동감을 담고 있는 셈이다. 아바도-베를린필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앨범은 5장짜리 CD박스와 5개의 DVD 디스크로 각각 출시됐다.

02-3408-8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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