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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아들 만날 수 없어…"…태평양 건너서 '애끓는 부정'

미주중앙

입력

휴스턴대 재학생이였던 도미닉 박씨가 가족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옆에 놓인 볼링 트로피가 사고 전 건장했던 박씨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휴스턴크로니클 제공]

'내가 가야 아들이 재활치료를 받는데….'

서울에 발이 묶인 박창수씨(가명.58)는 텍사스에서 애타게 자신을 기다릴 아들 도미닉(28) 생각에 오늘도 밤잠을 설쳤다.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유학을 갔던 도미닉은 4년째 전신마비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과 휴스턴을 오가며 아들의 재활치료에 매달리던 박씨는 지난 2월 15일 텍사스주 조지 부시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됐다. 국경세관단속국(CBP) 요원이 언어장벽에 가로막힌 박씨를 오해했던 것이다.

도미닉은 유학중이던 지난 2008년 7월 5일 새벽 불운과 맞닥트렸다. 재학 중이던 휴스턴 대학에서 집으로 오던 도미닉을 2명의 10대 강도가 가로 막았다. 차 열쇠와 지갑을 뺏은 강도들은 총을 쏜 뒤 그대로 달아났다. 목 부근에 총을 맞은 도미닉은 목 아래가 마비됐다.

이 때부터 박씨 가족의 지난한 투쟁이 시작됐다. 아버지 박씨와 어머니 오영교(가명.53)씨는 관광비자로 6개월씩 교대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아들 재활에 나섰다.

한국에서 운영하던 인쇄소를 처분했다.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려 서울의 콘도는 물론 자동차까지 팔았다. 도미닉이 폭력 범죄 피해자로 인정돼 U비자를 발급 받은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미국에 체류하며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고 해리스 카운티의 자선단체인 '골드 카드'가 제공하는 보험 혜택을 받아 치료비 부담이 조금이라도 줄었다.

암흑의 긴 터널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는데 재활의 손과 발이었던 아버지가 올 수 없다. 도미닉은 본지와 통화에서 "(몸무게 200파운드의) 절 휠체어에 올려주고 내려주는 데 아버지가 꼭 필요하다"며 암담해 했다. "어머니는 제 체중을 감당 못 하세요.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병원에서 받는 재활치료인데 아버지 없이는 안 돼요."

관광비자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박씨 부부는 6개월에 한번씩 한국과 미국을 오가야 했다. 이 힘든 상황은 지난해 5월 좀 나아지는 듯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통해 입국하던 어머니 오씨에게 6개월 체류 도장을 찍어주려던 CBP 요원은 과거 출입국 기록을 보더니 방문 이유를 물었다.

오씨는 통역을 통해 아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CBP 직원은 “다음엔 의사의 편지를 첨부해 체류기한 연장 요청을 하라”며 1년 체류를 허락했다.

희망에 찬 아버지 박씨는 아내가 제출한 것과 같은 서류를 준비해 입국하며 1년 체류 신청을 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CBP 직원들이 그를 별실로 데려갔다. 도미닉에 따르면 CBP 직원들은 영어를 전혀 못하는 박씨에게 취업 목적으로 미국에 온 게 아니냐, 가족과 함께 불법체류할 계획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박씨가 이를 부인하자 CBP 직원은 서류를 내놓으며 서명을 하라고 했다. 도미닉은 "전화로 연결된 한국어 통역관이 단지 '서명을 하지 않으면 5년간 영구 추방될 것'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어쪌 수 없이 서명을 하고 비자에 입국거절 도장을 받은 후에야 가족에게 이같은 사실을 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박씨는 이튿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미닉은 "그(CBP 직원)들이 아버지에게 '당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증거가 있다. 당신은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서명한 서류가 무엇인지도 아직 모른다"며 안타까워 했다.

도미닉의 대학 시절 그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며 사고 이후 여러 차례 그를 방문했던 주디 클리맨은 2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언어 장벽때문에 (박인희씨가) 이런 대우를 받게 된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클리맨은 또 "이민법에 해박한 실라 잭슨 리 텍사스주 하원의원이 도움을 줄 의향을 밝혔다"고 전했다.

도미닉이 총격을 당한 직후, 의사들은 그가 앞으로 말도 못하고 전혀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현재 상태에 대해 “팔은 움직일 수 있으나, 가위바위보를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의사들도 희망을 갖게 됐다. 도미닉은 “(의사한테) ‘내가 걸을 수 있게 될까’ 라고 물어보자 ‘네가 하기 나름’이라고 답을 했다”고 말했다.

다시 걷게 될 날을 꿈꾸며 희망에 부푼 도미닉에겐 지난 달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닥쳤다.

박씨 가족의 이야기는 일간지 휴스턴 크로니클 25일자를 통해 소개되며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도미닉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줘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2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1명은 9~10세, 다른 1명은 12~13세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범인들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 도미닉은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는다"며 "내게 총을 쐈을 때 그들이 겁에 질렸기를, 그 순간의 두려움 때문에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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