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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태희 커피 vs 연아 커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우리나라 커피믹스 시장 규모는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연간 1조1000억원어치가 팔린다.

 이른바 ‘태희 커피’가 등장하기 전엔 동서식품이 전체 시장의 거의 90%를 차지했다. 다국적 식품회사인 네슬레가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정도였다.

 2010년 10월 남양유업이 톱스타 김태희를 모델로 내세워 커피믹스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면서 시장 판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남양유업 입장에서 보면 견고한 동서식품의 아성을 뚫기 위해선 뭔가 충격요법이 필요했을 법하다. 김태희가 커피 잔을 엎어버리는 장면과 함께 “프림에 카제인(나트륨)을 넣은 커피-더 이상 안 된다!”는 카피를 넣었다. “그녀의 몸에 카제인 나트륨이 좋을까? 무지방 우유가 좋을까?” 등으로 천연식품을 선호하는 요즘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했다.

 이 작전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불과 1년5개월여 만에 남양유업은 시장 점유율을 22%까지 끌어올렸다. 동서식품도 최근엔 피겨 여왕 김연아를 모델로 내세운 ‘연아 커피’를 선보였고 여기엔 카제인 나트륨이 들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카제인 나트륨이 무엇이기에 논란의 중심에 섰을까. 혼동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카제인(casein)은 우리말 발음이 비슷한 카페인(caffeine)과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다. 카제인은 우유에 든 단백질의 일종으로 영양물질이다. 우유엔 유당(탄수화물)·유단백질·유지방 등 세 가지 영양소가 들어 있다. 이 중 유(乳)단백질은 카제인 80%와 유청 단백질 20%로 구성된다. 카제인은 모유에도 함유돼 있다. 다만 모유엔 카제인과 유청 단백질의 비율이 40 대 60이라는 점이 우유와는 다른 점이다.

 따라서 카제인이 들어 있다고 해서 식품 안전상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카제인 나트륨 대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는 ‘태희 커피’에도 카제인은 당연히 들어 있다.

 카제인 나트륨은 쉽게 말해 카제인+나트륨이다. 동서식품 측이 과거에 천연 카제인 대신 카제인 나트륨을 사용한 것은 카제인보다 카제인 나트륨이 물에 더 잘 녹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식품안전연구원 학술이사인 고려대 식품공학과 이광원 교수는 “카제인과 카제인 나트륨은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했다. 카제인 나트륨도 카제인과 마찬가지로 안전성이 전 세계적으로 입증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선 남양유업도 동의한다.

 커피믹스에 카제인을 넣는 것은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다. 카제인은 또 커피믹스를 타서 마시는 사람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고 물과 기름이 잘 섞이도록 하는 유화제 역할도 한다. 한국·일본에선 식품첨가물로 간주되나 유엔 산하기관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카제인과 카제인 나트륨을 그냥 식품으로 분류한다.

 동서식품은 “(남양유업이) 식품첨가물에 대한 소비자의 막연한 거부감을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으로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주장한다. 남양유업은 “천연 식품을 선호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부응한 것이며 식품첨가물은 가능한 한 적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커피믹스에 무지방 우유와 카제인 나트륨 중 무엇을 썼든 상관없이 안전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마케팅 측면에선 승부가 이미 난 것 같다. 요즘 소비자에게 천연식품(우유)과 식품첨가물(카제인 나트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십중팔구는 전자에 끌릴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식품첨가물이 없는 식품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식품첨가물 없는 먹을거리는 쌀·보리·고기 등 천연식품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커피믹스 공방처럼 식품업체들끼리 식품첨가물 안 쓰기·적게 쓰기를 경쟁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선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식품첨가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심어주는 것은 결국 식품산업엔 독(毒)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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