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족의 문제 ① 호조 츠가사 〈패밀리 콤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인가?

지난 7월 21일 인터넷의 여러 게시판에 '우리 엄마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랐다. 광주에서 대학에 재학 중인 하아무개(21)씨가 올린 이 글은 현직 파출소장인 어머니 김아무개(42)씨의 불륜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다.(자세한 내용은 〈한겨레 21〉 제 320호 커버스 토리 참조)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만든 '친딸의 파출소장 엄마 고발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 이십년 동안 살아온 부부가 있다. 부인은 가끔 남편에게 맞았고, 딸과는 친구처럼 사이가 좋았다. 95년부터 이혼을 결심한 부인은 99년 말에 남편에게 이혼 의지를 피력했고, 지난 7월 9일 시아버지가 이혼 사실을 인정한 뒤 집을 나왔다. 7월 24일에는 법원에 이혼장을 제출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7월 20일 부인이 남자 친구와 살고 있는 집을 12명의 가족이 급습했다. 그리고 7월 21일 딸이 인터넷 게시판에 "아빠의 잘못이 아니라 엄마의 외도로 이혼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분노감과 막막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입니다. 엄마는 엄마로서 책임도 다 버린 채 자식들마저 버리고 떠났습니다"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그리고 부인은 남편에게 간통죄로 고소 당했고, 경찰은 서장직을 수행하던 부인의 직위를 해제했다.

〈한겨레 21〉은 이 내용을 기사화하며 "누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돌은 이미 딸에 의해 던져졌다. 딸은 보이지 않는 손인 '가족'에게 돌을 건네 받아 어머니에게 던졌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일이 정당화되는 세상은 딸과 어머니라는 큰 피해자를 낳았다.

강요가 아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가족

문제는 가족이다. 힘들고 피곤할 때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는 스위트 홈. 모든 세상 사람이 나에게 등을 돌려도 위로를 해 준다는 가족.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족에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돌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들을 엿볼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을 사유물로 생각한다. 자식의 인권보다는 부모의 뜻이 우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개인적인 행복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참고 희생한다. 희생은 가족의 미덕으로 그려지며 결혼하기 싫어하는 독신주의자나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희생을 강요당한다. 견고한 가부장적 질서에 기반한 가족의 울타리는 매우 견고해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시티헌터〉로 유명한 호조 츠가사의 〈패밀리 콤포〉는 우리에게 익숙한 가족의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보는 만화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자신에게 냉정하던 아버지까지 잃어 혼자 살게 된 대학생 마사히코에게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이모 유카리가 나타난다. 유카리는 함께 살자고 제안하고 마사히코는 그 제안을 따른다. 이모에게는 만화가인 남편 소라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시온이 있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이 가족은 남과 다르다. 엄마인 유카리의 생물학적 성은 남성, 아빠인 소라의 생물학적 성은 여성인 트랜스 젠더(만화에서 '호모'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잘못된 사용된 명칭이다. 동성애자는 같은 성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성전환자는 생물학적인 성이 아닌 다른 성으로 사는 사람이다)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사히코는 충격을 받지만 함께 살게 된다.

이 만화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독특한 설정과 고백하지 못하는 삼각관계, 그리고 적당한 섹슈얼리티가 양념으로 첨가된 전형적인 일본의 상업만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만화가 소라의 어시스턴트들도 모두 트랜스들인데, 그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유도선수 출신이 있다. 그는 다른 어시스턴트들과 달리 가정을 꾸미고 아이까지 있다. 어느날 아이가 학교 숙제 때문에 아빠의 일하는 모습을 견학하러 온게 되자 그는 남자의 모습으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여성으로 있을 때와 달리 불안하고 일에 몰두하지 못한다. 아이는 아빠의 모습에 실망하고 돌아간다. 그리고 그는 다시 여장을 하고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린다. 그 장면을 다시 돌아온 아이가 우연히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의외로 아이는 아빠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너무 쉽게 충격적인 장면을 받아들인다. 마사히코도, 아이도 그리고 다른 여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패밀리 콤포〉는 나와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만화가 지닌 또 하나의 미덕은 트랜스에 대한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깨준다는 점이다.보통 TV 다큐에 등장하는 트랜스는 모두 여자보다 예쁜 미모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술집에서 일한다.) 그러나 모든 트랜스들이 화장하고 치마입고 술집에 다니지 않는다. 게다가 보통 여자들보다 예쁘지도 않다. 그들은 여자처럼 예쁘게 태어난 남자들이 아니라 남자로 잘못 태어난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트랜스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 각각 전혀 다른 성향을 보여준다고 한다. 〈패밀리 콤포〉를 보면, 트랜스와 트랜스가 만난 부부, 남자를 좋아하는 트랜스, 남자와 여성을 모두 좋아하는 트랜스들이 등장한다. (www. exzone.com 게시판에 실린 '트랜스가 쓴 트랜스 이야기' 참조)

이들 가족은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가족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이 뒤바뀐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준다. 처음보는 자신의 조카를 가족으로 받아주고, 야쿠자 아버지에게 반항적인 아들(명백히 선척적인 트랜스는 아니다. 그러나 여성이지만 스스로 남성을 지향하는 조금 모호한 트랜스 젠더)까지 가족으로 받아준다. 이들에게 '가족'은 개인의 행복을 차압당하고 유지되기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가부장적 질서 대신 서로를 이해하는 따뜻한 사랑이 있다. 가족을 구성하는 아주 간단한 근본 원리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그리고 사랑은 상대방에게 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작은 교훈을 전해준다.

다름을 인정하는 만화

만약 하아무개씨가 가족이라는 개념이 혈연과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진리를 알고 있었다면 딸이 어머니를 고발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하아무개씨는 이십여년 동안 유지하기 힘들었던 결혼생활을 해온 어머니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고, 이혼을 결심한 어머니의 행동을 '배신'이라고 단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족들의 행복이 중요한 것과 똑같이 어머니에게도 행복을 추구할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것이다. 〈패밀리 콤포〉가 비록 퀴어 만화는 아니라 해도 각각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진정한 가족이란 개념을 제시한 만화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가족을 지탱하는 힘은 강요가 아니라 사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