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경까지…" 심각한 전염병 '수퍼결핵' 20대男이 차 영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자동차 영업사원인 이영호(26·가명)씨는 웬만한 약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수퍼 결핵(광범위 내성 결핵)’ 환자다. 5년 전 상경해 혼자 살면서 하루에 한 끼니만 먹거나 술안주로 저녁을 때우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더니 어느 날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왔다. 결핵이었다. 6개월간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하지만 3개월만 먹고 말았다. 입맛이 떨어지고 속이 쓰려서다. 이씨는 하루 평균 10여 명의 고객을 만났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몸살 증세가 찾아왔다. 오래 서 있기 힘들고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결국 두 달 전 결핵전문인 서울시립 서북병원을 찾았다. 이번엔 수퍼결핵이었다. 이씨는 “처음부터 꾸준히 치료받았으면 이 지경이 안 됐을 텐데”라고 말했다.

 이씨가 앓는 수퍼결핵은 일반 결핵보다 훨씬 독한 병이다. 일반 결핵은 6개월간 약을 끊지 않고 잘 먹으면 완치되지만 수퍼결핵은 치료가 잘 안 된다. 두 종류의 약이 안 듣는 다제내성(多劑耐性) 결핵보다도 더 독하다.

 이씨처럼 거리를 활보하는 수퍼결핵 환자가 늘고 있다. 본인이 수퍼결핵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개 일반 결핵→다제내성 결핵→수퍼결핵 순으로 악화된다. 수퍼결핵 환자의 균에 감염되면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수퍼결핵이 된다. 2008년 질병관리본부가 결핵 환자 5만 명의 진료기록을 분석한 결과 수퍼결핵 환자가 750명(다제내성 환자는 2400명)이었다. 질병관리본부 조은희 연구관은 “다제내성·수퍼 결핵은 치료가 어렵고 처음부터 내성 균을 퍼뜨리기 때문에 몇 년 사이에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수퍼결핵 환자 관리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21일 전남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40대 여성이 수퍼결핵이 의심됐지만 보건소 검사를 받다 종적을 감췄다. 국립목포병원 김대연 원장은 “결핵환자 중에 버스기사·교사·음식점 종업원 등 일반인과 많이 접촉하는 사람이 있지만 일자리를 놓칠까 봐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립 서북병원 조영수 결핵과장은 “초기에 결핵 환자를 발견해 제대로 치료해야 한다. 수퍼결핵 환자는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데 환자가 심각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별도의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퍼결핵=결핵은 숨을 내쉴 때 균이 나와서 옮긴다. 6개월간 약을 잘 먹으면 완치된다. 악화되면 아이나·리팜핀 등의 약물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 결핵이 되고, 더 악화되면 수퍼결핵이 된다. 수퍼결핵 환자의 완치율은 20~30%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