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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품었던 몽골 독수리, 알 낳았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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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19일 경기도 파주시 감악산 기슭에 있는 독수리 보호시설인 ‘조류방장’ 나무 둥지 안에 놓인 가로 9.2㎝, 세로 6.6㎝, 무게 200g의 흰색 타원형 독수리 알(오른쪽 사진). 암컷 독수리 한 마리가 정성스럽게 자신이 낳은 알을 품고 있다. 하지만 암컷 독수리는 20일 구경 온 탐방객들의 소리에 놀라 허둥대다 알을 깨뜨리고 말았다. [사진 한국조류보호협회]

세계적 멸종위기 조류인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1호)가 국내 월동지에서 알을 낳았다. 독수리가 서식지나 번식지가 아닌 곳에서 알을 낳는 것은 이례적이다.

 22일 한국조류보호협회에 따르면 한겨울을 나기 위해 한국으로 날아왔다가 부상으로 몽골로 돌아가지 못한 독수리가 알을 낳은 것으로 확인됐다. 독수리가 서식지가 아닌 월동지에서 번식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보고된 적이 없다. 서식지 외 지역에서의 산란은 올해 벨기에 한 동물원의 사례 한 건이 유일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독수리는 지난해 5월 짝짓기 후 둥지를 틀고 돌멩이 한 개를 물어다 놓고 알처럼 품어 10개월 전부터 주목 대상이었다. 그동안 ‘상상임신’인지, 알을 낳기 위한 준비인지 해석이 분분했다. <본지 2011년 5월 2일자 22면>

 산란이 확인된 것은 19일 오전 11시20분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감악산 기슭에 있는 독수리 보호시설인 ‘조류방사장’에서다. 암컷 독수리 한 마리가 가로 9.2㎝, 세로 6.6㎝, 무게 200g의 흰색 타원형 알 한 개를 낳아 품고 있었다. 암컷 옆에는 수컷 독수리 한 마리가 머물며 주위를 경계했다. 독수리 부부는 이에 앞서 지난 1∼2월 부리와 몸을 서로 비비며 수차례 짝짓기를 했다. 이어 이달 들어 방사장 내에 흩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모아 직경 1.5m 크기의 둥지를 만든 후 산란을 준비해 왔다. 이 같은 과정은 협회 측이 미리 설치해둔 폐쇄회로TV(CCTV)에 녹화됐다. 이 독수리 한 쌍은 날개를 다쳐 11년 전부터 방사장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

 독수리는 매년 4∼9월 몽골에서 서식한다. 그곳에서 4월 무렵 한 개의 알을 낳는다. 이어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국으로 2500여 마리가 날아와 겨울을 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1000여 마리가 파주시 장단면 거곡리 민통선 내 장단반도에 머문다.

 한국조류보호협회 한갑수(59) 파주시지회장은 “안타깝게도 알을 발견한 다음 날인 지난 20일 오후 4시쯤 알이 깨지는 바람에 부화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탐방객의 말소리에 놀란 암컷이 둥지를 왔다 갔다 하며 허둥대는 과정에서 깨졌다는 것이다.

 협회 측은 추가 산란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21일부터 다른 독수리 암컷 한 마리가 빈 둥지에 들어앉아 산란 준비 행위를 하고 있고, 주변에는 서너 마리의 수컷이 경계를 서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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