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oney&] 美테크, 감상만 할 텐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이우환(1936~)
선으로부터
53X45.5㎝(10호) 1978년 작
경매 추정가 2억6000만~3억1000만원

불황도 이런 불황이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만 해도 한 해 2000억원에 육박했던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가 2009년엔 700억원으로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최근 조금씩 살아날 기미가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 역시 918억원으로 호황기에 비하면 반 토막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면 내가 산 미술품 가격도 반 토막이 났을까. 답은 ‘노(No)’다.

 한 개인 컬렉터는 미술품 값이 하늘을 찌르던 2007년 11월, 국내의 한 경매에서 이우환의 1976년 작품 ‘점으로부터’(20.5X59㎝)를 2억8000만원에 낙찰받았다. 주가로 치면 시기상 ‘상투’를 잡은 셈이다. 그는 최근 이 작품을 21일에 열리는 K옥션 봄경매에 다시 내놓았다. 작품을 위탁 받은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이 매긴 경매 시초가는 2억8000만원. 아무리 싸게 팔린다 해도 최소한 2억8000만원은 받는다는 얘기다. 경매회사가 통상 시중 유통가격의 20%쯤 낮은 가격에 시초가를 매긴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점에 산 이후 시장이 줄곧 불황이었음도 불구하고 작품 가격은 20%쯤 오른 셈이다.

 또 다른 개인 컬렉터는 2000년 경매에서 8000만원에 산 이중섭의 1972년 작품 ‘노란 태양과 가족’(15X14㎝)을 K옥션에 위탁했다. 이번 봄경매에 이 회사가 매긴 추정가격은 1억~1억5000만원. 아무 경합 없이 최저가로 낙찰된다 해도 이 컬렉터는 최소한 25%를 남기게 된다.

 불황으로 미술품 거래가 뚝 끊기고 미술품 가격도 크게 떨어졌지만 일부 ‘블루칩’ 작가의 그림값은 오히려 이렇게 크게 올랐다. 최소한 크게 떨어지진 않았다. K옥션 손이천 과장은 “미국 온라인 미술품 경매회사 아트넷에 따르면 2005~2010년 이우환의 경매가를 기준으로 매긴 ‘이우환 인덱스’는 같은 기간 미 S&P 500 지수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며 “미 증시에 투자한 것보다 이우환 작품에 투자했을 때 수익률이 더 높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주가보다 수익률이 더 높다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미술품에 투자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답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시장 투명성과 가격 탓이다. 서울옥션 최윤석 부장은 “최근 전 세계 시장의 41.4%를 점유할 만큼 급성장한 중국 미술시장은 갤러리 비중이 미미해 경매시장이 사실상 전체 미술시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컬렉터와 화상들 간에 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미술품 거래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얘기다.

 우리는 정반대다. 상장사인 서울옥션의 주가 전망 리포터를 냈던 동부증권 김승회 애널리스트는 “국내 미술시장은 양성적인 경매보다는 음성적 거래가 훨씬 많아 시장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개인 컬렉터 입장에서 볼 땐 작품을 시세보다 비싸게 주고 살 위험이 상존해 섣불리 투자에 나서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예금보험공사가 부실 저축은행에서 압류한 미술품 91점은 장부가로 100억원대로 알려졌지만 막상 경매에 내놓기 위해 위탁받은 서울옥션이 제3의 감정기관에서 감정한 결과 이에 훨씬 못 미쳤다. 줄리안 슈나벨 작품은 장부가가 4억2000만원으로 적혀 있었지만 감정 결과를 반영한 경매 시작가격은 9500만원에 불과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구입 시기를 알 수 없어 확실치는 않지만 작품값이 많이 떨어졌다기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산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미술품 투자 초보자라면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경매를 활용하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여전히 ‘미술품=사치품’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미술품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다. 그러나 “미술품 투자는 일부 부자의 영역”이라는 세간의 인식은 사실과 좀 다르다.

 미술시장 분석기관인 미술시장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각종 아트페어 판매액 합계는 310억원으로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319억원)과 비슷했다. 미술시장이 워낙 가라앉다 보니 컬렉터가 ‘큰손’→‘일반투자자’로 넓어지며 시장의 문턱이 낮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일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 경매를 살펴보면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옥션이 2010~2011년 열린 온라인 경매에서 낙찰된 작품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53%가 100만원 미만이었다. 또 500만원 이상은 8%에 불과했다. 서울옥션 최 부장은 “사상 최고가에 낙찰된 작품 소식만 떠들썩하게 알려져서 그렇지 실제로는 저렴한 작품이 많다”며 “온라인뿐 아니라 2006~2011년 오프라인의 메이저 경매에서도 500만원 미만 제품이 54%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경매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작품을 산다 해도 장벽이 또 하나 기다리고 있다”며 수익률을 문제 삼는다. 삼성증권 박경희 UHNW사업부 상무는 “일부 스타 작가를 제외하고는 가격 변동이 별로 없어 단기 투자용으론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상대적으로 손실을 볼 리스크가 작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금융상품은 줄 수 없는 예술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안목만 있다면 주식을 능가하는 수익을 올릴 수도 있는 미(美)테크. 자,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 보시겠습니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