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90도 인사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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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현대백화점이 다음 달 말 백화점 업계 최초로 35세 미만 고객을 위한 VIP라운지를 연다.

 ‘U라운지’로 이름 붙여진 이 라운지는 현대백화점이 18~35세 젊은층을 위해 서울 양천구 목동점에 만든 영패션 전문관 유플렉스 지하 3층에 들어선다. 165㎡(50평) 규모의 이 공간에서는 각종 문화예술 공연 관람은 물론 한정판 상품판매도 이뤄질 예정이다. 35세 미만만 가입할 수 있는 현대백화점의 ‘U카드’ 소지자가 일정 마일리지를 차감하고 이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U라운지를 여는 것은 ‘2030세대’를 위한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고객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과도한 인사’ 자제령을 내렸다. 젊은 고객들이 지나친 친절을 부담스러워한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직원들에게 고객과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와 눈웃음으로 응대하게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직원 평가에서 10점이었던 인사부문 배점을 3점으로 낮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유플렉스 직원들에 한해 정장만 고집했던 기존의 복장규정을 없앴다. 청바지·흰 티셔츠는 물론 염색·귀고리까지 허용했다. 젊은이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이다. 하병호 현대백화점 대표가 일주일에 서너 번씩 직접 ‘암행사찰’에 나서며 이 같은 사항이 잘 지켜지는지 손수 점검한다.

이러한 전략은 백화점의 20~30대 고객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 이들의 구매력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현대백화점이 20~30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가격이 비싸도 유명 브랜드를 사겠다(39%)”거나 “꾸미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46%)”는 답변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2030세대는 쇼핑을 ‘놀이’로 여기며 경기 불황에도 소비 자체를 즐기는 ‘즐소비족(族)’이라는 얘기다.

현대백화점의 이런 전략은 1990년대 초반 경기 불황 때 다이마루 같은 일본 백화점들이 젊은 세대에 대한 마케팅을 줄였던 것과는 반대다. 당시 일본 젊은이들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소득이 늘어도 소비를 늘리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이들은 ‘혐소비족’이라 불리며 일본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사회적 문제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국내 백화점들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젊은층 마케팅에 소극적이었다”며 “하지만 일본 백화점들이 젊은 고객을 잡지 못해 노후화하고 성장이 저하되자 ‘일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느끼고 전략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VIP라운지 외에 U카드의 적립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젊은 고객들을 더 끌어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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