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초·송파&] 첫 눈에 반한 야구와 8년째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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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를 연고로 한 여자야구단 ‘베이스조이’를 이끌고 있는 석진영(34) 감독. 2004년 TV에서 여자야구팀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본 다음날부터 야구사랑에 빠졌다. 2006년 베이스조이를 창단해 일요일마다 송파리틀야구단 구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다. 평일엔 대학원에서 스포츠경영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2008년 일본에서 열린 여자야구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조한대 기자 , 사진=황정옥 기자

주말에 데이트요? 야구 연습이 더 즐거운 걸요!

송파구 여자야구단 베이스조이

여자야구단 ‘베이스조이’는 매주 일요일 송파구 잠실동 송파리틀야구장에 모여 연습을 한다.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보는 야구’를 넘어 ‘하는 야구’에 푹 빠진 여성이 있다. 송파구를 연고지로 삼은 여자야구단 ‘베이스조이’의 석진영 감독이다. 미혼인 그는 일요일에 데이트 대신 야구연습을 한다.

“탕~!” 알루미늄 방망이에 맞은 공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소연아. 뛰어~” “받아서 아지(별명)한테 줘야지.” 지난 11일 오후 4시 송파구 잠실동 송파리틀야구장. 베이스조이 선수들이 외야에서 높이 뜬 공을 잡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석 감독이 친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선수들은 안간힘을 쓴다. 공이 글러브를 벗어나고, 선수가 뒤돌아 뛰다 넘어져도 질책 대신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선수가 알까기(공을 놓친 경우를 빗댄 속어)를 해도 전혀 구박하지 않아요. 즐기는 야구를 하는 것. 제가 이 팀을 만든 이유고 팀 색깔이거든요.” 석 감독이 말했다. 그가 야구와 인연을 맺은 건 2004년이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서 여자야구를 소재로 한 TV 다큐멘터리를 봤다. ‘굉장히 못하네, 내가 가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바로 그 팀을 찾아갔다. 당시만 해도 야구하는 여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다. 막상 해보니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투구 연습 중인 안소연(21)씨.

그가 입단한 뒤 팀원이 30여 명으로 늘어났다. 서강대교 남단 한강 둔치가 연습장이었다. 장소가 좁아 모든 팀원이 동시에 연습할 수 없었다. 일부 팀원들이 새로운 팀을 만들 테니 함께 해보자고 했다. 그는 더 많은 연습을 하고 싶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번째 팀에서 활동하며 뜻 맞는 선수들을 만났다.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진 팀을 결성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2006년 석 감독을 포함한 5명이 베이스조이를 만든 계기다.

그는 운동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시절 운동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했다. 대학도 서울여대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친구들이 “진영아, 운동하자!”고 하면 마다하지 않았다. 대학생 때는 남자 친구들과 농구를 한 적도 있다. 그가 즐기는 운동은 야구 외에도 테니스·탁구·배드민턴 등 다양하다. “여자들은 바깥에서 운동하는 걸 꺼려하잖아요. 햇빛에 피부가 상할까 봐서요. 전 운동 좋아하는데요. 야구하면 정말 행복해요. 저처럼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요.” 그는 인터뷰 내내 “즐겁다” “행복하다”는 말을 여러 번 꺼냈다.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니 금방 친해진다”고 말했다.

2008년 IT 관련 회사를 그만둔 그는 2년 전부터 고려대 대학원 체육학과에서 스포츠경영을 전공하고 있다. 그의 모습을 못마땅해 한 분이 있었다. 아버지였다. 법대 교수인 아버지는 딸이 체육을 하길 원치 않았다. 대학 체육학과 입학도 어렵게 받아낸 허락이었다. 대학을 나온 딸이 여자들은 잘 하지도 않던 야구를 하더니 체육학 관련 대학원에 들어갔다. “반대하셨죠. 대학원 입학 문제로 3~4년은 설득했어요. 뒤늦게 체육인의 길을 가겠다는 딸을 걱정하신 것 같아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아버지도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다. 베이스조이가 전국대회에서 경기하는 날.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아버지는 10~15분 구경하다 자리를 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아버지의 응원 속에 치른 소중한 경기였다.

요즘 그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결혼이다. “결혼도 해야 하는데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냐며 어머니께서 걱정하세요. 말수가 적으신 아버지도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라’고 말씀하시고요.” 그도 남자친구를 사귈 생각은 있다. 그런데 생각만 있다. 바쁘단다.

“회사생활 할 때는 야근이 많았고 대학원 다니면서는 공부 때문에 평일에 시간이 없네요. 주말에 할 게 없거나 심심하면 소개팅 해서 남자친구를 만들었을 텐데요. 주말엔 야구로 바빠요. 요즘 여자야구팀도 늘어나고 실력도 좋아져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하거든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석진영 감독

야구를 시작한 후 연애도 제대로 안 한 그다. 야구와 관련된 추억이 많지만 2008년 일본에서 열린 여자야구월드컵에 출전한 건 잊을 수 없다. 여자야구 국가대표로 뽑혔다. 선발진에는 들지 못했다. 소프트볼을 하다가 야구로 전향했거나 경험 많은 선수들에게 밀렸다. 그는 두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일본과의 경기 9회 말 투아웃. 한국이 지고 있었다. 지명타자로 나선 그는 삼진을 당했다. “처음이라 긴장한 탓도 있었지만 일본 투수의 공에 감탄했어요. 직구가 시속 110km, 변화구도 90km였거든요. ‘정말 잘한다. 우리와 현격한 수준 차가 나는구나’ 생각했죠.”

세계대회에 참가한 뒤 욕심이 생겼다. 한 번 더 참가하고 싶었다. 자신이 안 되면 같은 팀 선수라도 잘 훈련시켜 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베이스조이 팀원들은 20대 초반~30대 후반 미혼 여성이다. 그는 “일부러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로 팀을 꾸린 건 아니다. 결혼해도 야구를 계속하는 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팀 선수는 현재 15명이다. 직업은 대학생, 취업 준비생, 회사원, 물리치료사, 학원 강사 등이다. 이 중 대학생 안소연(21)씨는 팀의 막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야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TV 예능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을 보고 직접 야구를 하고 싶어 2009년 팀을 찾았다. “처음엔 어려웠는데 실력이 점점 늘더라고요. 언니들도 응원해 주고요. 경기에 나가면 승부에 집착해 눈살 찌푸려지는 언행을 하는 팀도 있는데 저희 팀은 웃으면서 하자는 분위기에요. 그게 가장 좋아요.”

회사원 유민정(24)씨는 팀 내 ‘멀티플레이어’다. 투수·포수·중견수 모두 소화한다. “주변에서는 여자라 잘 못 할거라는 반응이에요. 막상 제가 하는 걸 보면 놀라죠. 지금은 ‘한번 와서 보라’고 말해요.” 유씨는 “야구를 즐기자는 팀 분위기지만 이기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베이스조이의 전국대회 승리는 2009년 한 차례뿐이다. 지난 주말 폐막한 올해 첫 전국대회에 출전해 1회전에서 탈락했다. 6회 말까지 10대 10 접전을 펼치다 시간제한 규정에 걸려 경기가 종료됐다. 결국 추첨에서 져 패배했다. 여자야구 전국대회 경기는 7회 말까지 진행되나 4회 말 이후 소요시간이 2시간을 넘기면 끝나기 때문이다. 석 감독은 “지난해까지는 팀원이 자주 바뀌어 성적이 좋지 않았다. 올해는 다르다. 시작이 나쁘지 않다. 즐기면서도 이기는 야구를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

전국 29개 팀 활동
9명 이상이면 팀 등록

한국여자야구연맹(WBAK, Women’s Baseball Association Korea)은 여자야구 동호회 활성화를 위해 2007년 3월 출범했다.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29개 여자야구팀이 등록돼있다. 10일 현재 등록 선수는 553명이다. 서울 13개 팀 중 ‘베이스조이’는 송파구, ‘HIT’는 강남구가 연고지다. 이 밖에 경기 5개 팀, 부산 3개 팀, 대전·대구 각 2개 팀, 경남·광주·인천·전북 각 1개 팀이 있다. 연맹은 지난 주말 끝난 제2회 CMS기를 포함, 올해 전국대회를 총 6회 개최할 계획이다. 5월 익산시장기, 6월 계룡시장기, 8월 KBO총재배, 9월 청룡기, 10월 연맹회장기 전국대회가 열린다. 만 14세가 넘는 여성 9명 이상으로 구성된 야구팀은 WBAK 이사회 심의를 거쳐 가입할 수 있다. WBAK 박철호(50) 총무이사는 “야구를 하려는 여성이 연맹에 문의하면 거주지와 가까운 야구팀을 소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의 02-784-2359 www.wba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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