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현식 10주기맞아 헌정음반 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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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인 줄 알았는데 사랑인 줄 알았는데/알고 보니 눈이 부신 사랑이었어…생각해선 안될게 너무 많아/잊어서는 안될게 너무 많아/밤이면 작은 술잔 기울이더니/숨가쁘던 내 사랑 끝나버렸어/…/못다 푼 신명에 뒤돌아보면/바람 같은 목소리/흩어지는 바람같은 목소리…/' (바람인줄 알았는데 중에서)

'광기와 열정의 가수' 김현식이 새삼 그리운 계절이다.

이렇게 사랑을 노래하던 그는 훌쩍 세상을 떠났어도 그를 아끼던 많은 팬들은 '바람같은 목소리' 로 남은 그를 지금도 안타까워하고 있다. 1980년대 고독과 허무가 짙게 깔린 목소리로 때로는 시를 읊듯이, 때로는 울부짖듯이 노래를 들려줬던 사랑의 가객 김현식.

다음달 1일 그의 10주기를 맞아 동료와 후배가수들이 2장짜리 헌정앨범을 선보이고 추모 콘서트를 마련한다. 워너뮤직 코리아 안정대 부사장과 작스 미디어 이응주 사장이 함께 준비하고 기타리스트 함춘호씨가 프로듀싱을 맡은 이 앨범엔 후배.동료 가수 등 국내 가수 20여명이 참여했다.

〈여름밤의 꿈〉(조성모) 〈가리워진 길〉 (신승훈) 〈어둠 그 별빛〉 (이승환) 〈그대 이제〉 (윤종신) 〈아무말도 하지말아요〉(이은미) 등 김현식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후배들이 다시 불렀다.

또 그와 함께 무대에 섰던 섰던 신촌블루스 출신 엄인호. 한영애. 권인하 등도 그를 추억하며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를 함께 불렀다.

기타리스트인 함춘호는 김현식이 하모니카 연주로 들려줬던 노래〈한국사람〉을 기타로 다시 연주했으며, 영화배우 최민식도〈사랑했어요〉의 노래와 내레이션을 맡았다.

김형석.조동익.유희열.이경섭.최이철.박용준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작.편곡가들도 김현식의 노래를 요즘 감각으로 되살리는데 한몫했다.

이 음반은 개성 강한 가수들이 자신의 스타일로 김현식의 노래를 해석한 것이 특징. 록 가수인 김경호가〈사랑 사랑 사랑〉을 불렀고, 댄스가수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유승준은〈골목길〉을 불렀다.

그의 대표곡〈내사랑 내곁에〉는 당초 예정했던 전인권이 빠짐에 따라 김조한이 R&B스타일로 불렀다. 또〈너를 위해〉등 신곡을 발표하고도 방송활동을 하지 않아 '얼굴없는 가수' 로 통하는 가수 임재범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김현식과 음색과 창법이 가장 비슷한 가수이기도 한 그가 선택한 노래는〈비처럼 음악처럼〉 .임재범 특유의 음색과 풍부한 감성으로 소화해낸 이 노래는 김현식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소름이 돋을 만큼 각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헌정음반은 당초 추모일에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각 가수들의 스케줄때문에 일정이 다소 늦춰졌다. 헌정앨범에 참여한 가수들과 김현식의 가족은 추모비 건립과 추모 콘서트를 계획중이다.

'불멸의 가객' 김현식

"요즘처럼 혼탁한 대중음악 현실에 그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오직 고집스럽게 자기 음악만 하면서 방송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않은 유일무이한 존재였습니다. 진정으로 그의 발자취를 아끼고 조그마한 콘서트홀이라도 건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일 저는 김현식님을 만나러 성남에 갑니다. 소주와 담배.국화꽃, 그리고 김현식님의 모습을 그린 액자를 들고서요. 어쩜 그곳에서 여러분들을 만날지도 모르겠군요.... "

요즘도 김현식 팬이 만들어놓은 한 홈페이지에는 그의 노래를 사랑했던 팬들이 찾아와 그들이 사랑했던 김현식과 그의 노래들을 이렇게 추억하고 있다.

성남시에 위치한 김현식 묘소엔 팬들이 놓고간 꽃과 시.그림들이 끊이지 않는다. 1958년생인 김현식은 76년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해 80년〈봄 여름 가을 겨울〉〈당신의 모습〉 등을 수록한 '김현식 1집' 을 발표하며 언더그라운드의 지평을 넓혔다.

이후〈봄 여름 가을 겨울〉을 조직하고, 신촌 블루스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6집을 녹음이 진행되던 90년 11월 1일 32세 나이에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돼 숨을 거뒀다.

김현식의 히트곡〈골목길〉을 작곡했던 음악가 엄인호씨는 "무대에서 김현식이 노래할 때는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열정과 흥분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면서 "그는 무대에 함께 선 밴드를 감동시킨 진정한 가수였다" 고 말했다.

술을 너무나 즐겨 술병을 들고 즐겨 친구집을 찾았던 김현식에 대해 엄씨는 "어디로 튈 지모르는 성격 때문에 생활에선 순간마다 애증이 교차했지만 음악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뜻이 통하던 특별한 친구였다" 고 덧붙였다.

91년 2월 그의 유작 앨범과 그의 글모음집〈넋두리〉가 출반됐으며, 같은해 12월엔 대규모 추모 콘서트가 열렸다.

또 6주기인 96년에도 미발표곡들을 모은 유작 앨범이 발표됐다. 이번 헌정앨범에 참여한 또다른 동료 음악인은 "추모 앨범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비정한 심정으로 참여했다" 며 "그에 대한 사랑은 이제 팬들의 몫으로 남기고, 많은 가수들이 진정한 우정과 존경심으로 참여한 앨범인 만큼 수익금이 뜻깊게 쓰였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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