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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간인 사찰 전면 재수사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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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검찰이 지금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은 곧바로 전면 재수사에 착수하는 것 외엔 없다. 2010년, 검찰이 대통령을 비방한 민간인을 사찰한 것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며 수사를 종결했을 때도 항간에선 청와대 개입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당시에도 MB정권의 공신 세력인 소위 ‘영포라인’ 개입설은 파다했다. 다만 구체적 증거가 없었다.

 지난주 이 사건과 관련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청와대 개입 사실’을 폭로했고, 12일엔 구체적인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은 사실을 밝히겠다는 장 주무관을 달래면서 “이영호 비서관을 …더 죽이면 안 되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은 영포라인 핵심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대통령 핵심 측근이 범죄에 개입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또 최 전 행정관은 “검찰에서 겁을 절절 내면서 나에 대해 조심했던 게 내가 죽으면 당장 사건이 특검으로 가고 재수사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거 검찰이 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진작부터 수사의지를 의심받았다. 이미 장 전 주무관은 검찰이 증거인멸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JTBC와의 인터뷰에선 당시 함께 기소됐던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과장이 검찰 수사를 받은 뒤 신문조서를 가지고 와서 증언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사건 축소·은폐와 조작에 관여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지난주 폭로 이후에도 재수사 여부를 검토해 보겠다고만 했다. 하지만 추가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도 그런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피해 갈 수는 없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검찰이 범죄행위에 직접 가담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더 미룬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이다. 만약 내부에 관련자가 있다면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제갈량의 심정으로 잘라내고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