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사회사상의 '지식인 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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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표현대로 '압축근대' 에 살고 있는 당대 한국의 사회사상사다. 당대의 학자가 당대의 인물(지식인)을 상대로 그린 한편의 '지식인 지도' 다.

제1장 '동시대 한국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는 본론으로 들어가는 길라잡이. 1960~70년대와 '혁명의 시대' 라는 80년대 한국의 사상흐름을 개괄했다.

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한국 사상계에도 일대 소용돌이를 예고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쪽은 전통 마르크스주의에 기댄 학자들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전화(轉化)의 단계에 접어들었다.이미 60년대 이를 모색했던 프랑스의 지성 루이 알튀세르 등의 사상이 부각됐다.

제2장 '격변에 휩쓸린 사상' 은 지성계의 이런 고민을 담았다.90년대를 풍미한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은 학계의 유행어 자체를 바꿔 버렸다.

자본주의.계급.노동.국가 같은 딱딱한 용어는 육체.욕망.문화.지식 등 말랑말랑한 용어로 대체됐다.

제3장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한 '근대성' 담론의 양태를 살폈으며, 국민의 정부의 정책이념인 신자유주의와 진보진영의 대응 등 현재 진행형의 논쟁들은 제4장 '혼미를 거듭하는 사상' 에 담았다.

도표로 제시한 '지식인 지도' 는 이같은 사상의 흐름을 이끈 인물들을 유형화한 것. 어느 것은 '주의' 로, 어느 것은 '론' 으로 표현됐는 데 이는 서구 사상의 수용과 변용의 방식에 따라 갈렸다.

저자는 재일동포 2세로 현재 일본 가나가와(神奈川)대학에서 일본 근대사상사와 한국 현대사상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자기 학문에만 고립된 채 거대한 숲을 보지 못하는 한국의 학계에서는 섣불리 시도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주관적 판단에 의한 인물 구분이란 것은 분명 약점이지만 저자의 학문적 신뢰성이 훼손될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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