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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의원이 고소한 사건, 노사모 회원 같은데 … ” 김재호 판사, 빨리 기소해 달라고 전화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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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왼쪽부터 박은정 검사, 김재호 판사, 최영운 검사.

‘기소 청탁’ 의혹의 핵심 인물인 박은정(40)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가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가 9일 공개됐다.

 진술서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보면 박 검사가 나경원(49)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 김재호(49)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의 전화를 ‘기소 청탁’으로 받아들인 정황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박 검사는 2005년 공판검사로 일하면서 당시 형사5단독 재판장이던 김 부장판사를 알게 됐다. 박 검사는 공판검사 업무를 마치고 형사부 검사로 근무 중이던 2006년 1월 17일 나 전 의원이 “내가 친일파에게 유리한 판결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네티즌 김모(50)씨를 고소한 사건을 맡게 됐다. 며칠 뒤 김 부장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의원이 고소한 사건이 있는데 노사모 회원인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허위사실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사건을 빨리 기소해 달라. 기소만 해주면 내가 여기서···”라는 내용이었다고 박 검사는 진술서에 기재했다.

 사건기록을 검토한 박 검사는 네티즌 김씨가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게시판 같은 곳에 올린 것으로 판단한 뒤 일단 피의자 조사를 빨리 해야겠다고 보고 수사관에게 피의자를 소환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피의자가 바쁘다고 해 소환이 늦어졌고 때마침 박 검사도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어 사건을 처리하지 못하게 됐다. 이에 박 검사는 후임 검사에게 사건기록을 넘기면서 앞표지에 포스트잇으로 김 부장판사의 부탁 내용을 적어놨다. 김 부장판사에게도 “출산휴가 때문에 사건 처리를 못하게 됐다. 내용은 후임 검사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박 검사의 진술은 김 부장판사가 지난해 경찰 서면조사에서 “기소 청탁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것과 배치된다. 박 검사의 후임 검사인 최영운(45) 현 대구지검 김천지청 검사는 경찰 전화조사에서 “나 전 의원 측으로부터 기소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 ”고 진술했다. 지난해 10월 시사IN 주진우(40) 기자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김 부장판사가 박 검사에게 기소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나 전 의원 측은 주 기자를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주 기자도 “허위사실이 아니다”며 김 부장판사와 나 전 의원 등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맞고소했다.

 경찰은 향후 조사에서 박 검사의 진술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김 부장판사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 적용을 검토할 방침이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박 검사와 김 부장판사의 입장이 상반된 만큼 처벌 여부를 말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법관 징계의 경우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 다만 대법원 공직자윤리심의위원회에 넘겨져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두경고’나 ‘주의’를 받을 수 있다.

박은정 검사 진술서 주요 내용

“ (김재호 판사의) 전화 내용은 ‘나경원 의원이 고소한 사건이 있는데, 노사모 회원인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허위사실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사건을 빨리 기소해 달라. 기소만 해주면 내가 여기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사건기록을 검토해 본 결과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게시판 같은 곳에 올린 것으로 일단 피의자 조사를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수사관에게 피의자를 소환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 제가 며칠 후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은 처리를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사건이 재배당될 것이기 때문에 재배당을 받은 후임 검사님에게 포스트잇으로 사건기록 앞표지에 김재호 판사님의 부탁내용을 적어놓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김재호 판사님께도 제가 출산휴가를 가게 되어 사건처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후임 검사에게 내용을 전달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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