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의 힘… 대응책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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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부문에서 대만.중국 등 후발 경쟁국의 추격은 ''한발 먼저 뛰지 않으면 도태된다'' 는 글로벌 경제 시대의 냉엄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 일본의 투자가 주춤할 때 공격적인 투자로 90년대 중반부터 메모리 D램반도체 부문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생산 국가로 부상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80년대 중반 일본의 미국 추월, 90년대 한국의 일본 추월을 연상시키는 경쟁이 지금 한국과 대만에서도 재현되는 양상이라며 업계와 정부의 공동 대응을 주문했다.

◇ 대만의 추격〓세계 최대 수탁가공(파운드리) 전문업체인 TSMC는 올해만 43억달러를 투자해 올해 한국 반도체 업계 전체 투자액보다 많다. 2위인 UMC도 올해 24억달러, 내년에 30억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D램 분야에서도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94년 처음 D램 생산 기술을 개발했는데 지난해 프로모스.난야 테크놀로지.윈본드사 등이 세계 시장에서 5%를 점유(금액 기준) 하며 이 부분에서 한국.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들 회사는 앞으로 2년 안에 30억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세웠다.

프로모스사가 만드는 64메가D램의 원가는 2.5달러로 미국 마이크론(4달러) , 삼성전자(3.8달러) 보다 싸다.

대만 업체가 ▶기술개발에 들어간 비용이 적고▶대만 정부가 반도체 공장에 토지와 건물을 싼 가격으로 장기 임대하고▶반도체용 물품은 시설재 뿐만 아니라 원재료도 수입할 때 관세를 전혀 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도시바.미쓰비시.인피니온 등 다른 나라 업체의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 생산에 치중해온 대만의 D램 메이커들이 최근 독자 상표 비중을 늘리고 싼 가격으로 국제 현물시장을 파고들어 D램의 수급과 가격을 좌우하고 있다.

반도체 디자인분야는 1백27개사가 올해 매출 27억달러를 올릴 것으로 전망돼 업체 숫자나 매출액면에서 세계 2위다.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분야도 2005년에 한국을 따돌린다는 목표 아래 지난해 19억달러(한국은 8억달러) 를 투자하는 등 바삐 움직이고 있다.

산자부 반도체산업과 최규종 사무관은 "대만은 설계.조립.디자인.테스트 전문업체 등 반도체 관련 산업이 골고루 발달돼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크다" 고 말했다.

◇ 신흥세력 중국〓중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도 40년으로 길며, 현재 2백48개 기업에 14만5천명이 일하고 있다.

그전에는 시계 칩이나 음성.멜로디 반도체 등 가전제품에 쓰이는 값이 싼 칩이 주류였다.

그러나 홍콩 반환이후 홍콩의 반도체 업체와 유럽 등의 집중 투자로 최근 5개의 반도체 생산 회사가 설립됐고, D램과 S램 생산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디자인 기술은 베이징 집성전로 등을 비롯한 관민이 합자한 50~60개 회사가 개발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아직까진 국내 수요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두번째 이동통신 시장이나 네번째 PC 시장으로 수요가 공급을 못따라간다.

그러나 과거 일본이 국내 수요를 바탕으로 일으켰듯 반도체 산업을 일으킬 여건이 충분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국은 9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96~2000년) 에서 반도체 사업을 중점 육성사업으로 선정해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기반 조성에 힘쓰고 있다.

◇ 한국 업계의 현황과 대응〓한국 반도체산업은 미국.일본에 이어 3위의 반도체 생산국이며, D램은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한 1위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올 8월까지 반도체는 단일 품목으로 최고인 1백69억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그러나 수입도 1백29억달러에 이르러 무역흑자는 40억달러에 그쳤다.

D램 등 단순히 읽고 저장하는 기능의 메모리는 생산의 94%를 수출하는 반면 이보다 기능이 많은 고부가가치 비메모리는 수요의 91%, 반도체 장비의 87%, 재료의 44%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주변 산업도 취약하다. 반도체 소자 업체를 비롯 재료.장비.검사 업체가 1백89개에 이르지만 증권거래소나 코스닥 시장에 상장.등록한 업체는 29개사에 불과하다. 삼성전자.현대전자 등 일관공정 업체를 제외한 대부분 회사들이 영세하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온양에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을 착공했고, 현대전자는 D램 메모리 위주의 사업구조를 개편해 2003년까지 S램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15%, 플래시 메모리는 8%로 각각 올리기로 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다.

LG경제연구원 박필연 연구위원은 "세계 반도체 업계는 비메모리와 디자인 연구 등에 끊임없이 투자하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며 "한국업체들이 라인 보강이나 주가 부양을 위헤 자사주 매입에 신경쓰는 정도로는 세계적인 반도체 전쟁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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