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랜드마크를 찾아서] 3. 런던 '테이트 모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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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성당(Cathedral of Cool)'

런던 사람들이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유서깊은 세인트 폴 성당과 마주 서있는 테이트 모던을 가리키는 애칭이다.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지난 5월 개관한 초대형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공장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성당이란 별명을 얻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노먼 포스터와 세계적 조각가 앤서니 카로가 설계한 밀레니엄 브릿지를 통해 세인트 폴과 연결한 지리적 이유가 그 하나다.하지만 이 애칭에는 새천년 런던이 '멋지게 개종(改宗)'했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런던 시민의 자부심이 더욱 짙게 담겨 있다.

런던은 보수적인 도시답게 미술에서도 파리나 뉴욕에 비해 한층 폐쇄적이었다.

뉴욕이 1929년 현대미술관(MoMA)을 세우면서 현대미술의 중심을 파리에서 맨해튼으로 옮겨올 즈음 테이트 모던의 모체인 테이트 갤러리(현재의 테이트 브리튼)는 칸딘스키·브랑쿠지 등 현대미술 대가들의 걸작을 영국으로 들여오는 것조차 반대했다. 추상미술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 테이트 갤러리의 수장고 안에 묻혀있던 20세기 현대미술을 세상 밖으로 꺼낸 테이트 모던의 개관으로 런던은 뉴욕·파리와 함께 현대미술의 수도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크리스 스미스 영국 문화부 장관이 개관 기자회견에서 "테이트 모던은 뉴욕 모마·파리 퐁피두센터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현대미술관(총면적 3만4천㎡,전시면적 1만4천㎡)"이라며 "21세기의 런던, 아니 영국의 상징"이라고 분명히 밝혔을 정도다.

테이트 모던에 들어서면 광장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큰 터빈홀(길이 155m·높이 35m·폭 23m) 저쪽 끝 2층에는 높이 9m의 거대한 거미 한마리가 자리잡고 있다.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의 이 철제작품 '마망'은 50년 전이었다면 미술관에 떡 버티고 서서 관람객을 맞기는 커녕 작품으로도 인정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칸딘스키와 브랑쿠지는 물론 피카소·마르셀 뒤샹·요제프 보이스·앤디 워홀·잭슨 폴록·브루스 노먼 등 1백50여명의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테이트 모던의 등장은 또 하나,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공업사회의 상징인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함으로써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하드에서 소프트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영국의 그 유명한 빨강색 전화박스를 디자인한 건축가 길스 길버트 스코트 경의 대표작 중 하나. 63년부터 전력을 생산해오다가 공해 문제로 81년 발전을 중단, 10년 넘게 방치돼 있었다.

테이트 재단은 당초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건물을 새로 짓는 것도 고려했으나, 영국 미술관계자들 대부분이 미술관 신축에 반대해 결국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입지조건에다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붉은 벽돌 외관은 유지한채 꼭대기에 두개 층의 밝은 형광 유리 구조물을 얹어 신·구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냈다는 평을 받고 있는 테이트 모던은 94년 국제설계공모에서 당선한 스위스 바젤 출신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므롱의 작품이다.

시대의 전환이라는 의미를 담아낸 이 곳에 들어서면 오히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초현대적 미술관 안에 있으면서도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강 건너편 세인트 폴 성당 전경 때문에 시간을 혼동하는 것이다.

시대별로 전시를 꾸미는 다른 미술관들과 달리 상설전을 '역사·기억·사회' '누드·액션·몸' '풍경·물질·환경' '정태·오브제·동태' 등 크게 네 가지 테마로 엮어 근대작가와 현대작가를 한데 섞은 것도 이런 기분을 한층 강하게 만든다.

런던시의 밀레니엄 랜드마크 프로젝트로 인정받아 5천만 파운드를 지원받은 것을 비롯해 모두 1억3천4백만 파운드가 소요된 테이트 모던은 2년 앞서 개관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과 자주 비교된다.

화려한 외양으로 시선을 끄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에 비해 테이트 모던은 너무 초라하다는 평이다. 하지만 "빌바오는 건축 자체에 너무 초점을 맞춰 정작 작품이 빛나지 않지만 테이트 모던은 작품 하나하나가 살아난다"는 한 관람객의 평처럼 외양보다 내실을 추구하는 미술관이다.

개관 첫 주말에만 6만5천명의 이곳을 다녀갔고 6주만에 1백만명, 1백일만에 방문객이 2백만명을 넘는 등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99년 테이트 브리튼의 입장객 1백80만명을 추월했고 이 추세라면 지난해 5백46만명이 찾았던 대영박물관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층 특별전시장(3파운드)을 제외하면 입장료가 무료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어쨌든 테이트 모던의 성공은 인근 지역의 경제판도까지 바꾸어 놓을 만큼 위력이 대단하다. 경영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직접적 경제효과만 연간 5천만∼9천만 파운드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2천4백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도 제공했다고 하니 온 영국이 미술관 하나 탄생한 데에 그토록 호들갑을 떤 이유를 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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