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금융인생 김승유 “후임 정하고 퇴장 … 행복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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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습니다.” 퇴임을 앞둔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인생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는 “경영을 후임 김정태 회장 내정자에게 완전히 맡기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뉴시스]

그는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2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후임 회장을 내정한 뒤였으니 사실상의 퇴임 회견이다. 그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걸어온 1세대 전문금융인이다. 47년 금융인생 중 42년은 하나금융지주와 함께였다. 그는 1971년 하나금융의 모태인 한국투자금융에 창립 멤버로 입사했다. 당시 자본금 13억원의 단자회사(단기금융시장의 자금 중개회사)는 지금 366조원의 거대 금융지주사가 됐다. 회사 성장의 고비 때마다 그의 역할이 있었다. 91년 은행 전환작업과 98년부터 이어진 충청·보람·서울은행 합병, 최근 성사시킨 외환은행 합병을 주도했다.

 97년 은행장을 시작으로 14년간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것도 기록적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더 큰 기록을 썼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계에서 자의로 물러난 첫 금융지주 회장이란 기록이다. 입지전적 전문금융인이란 점에서 라이벌처럼 비교돼 오던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2010년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며 잡음 속에 퇴진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금융업계에서 후계를 양성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순조롭게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김승유 회장이 또 한번 금융사에 아름다운 획을 그었다”고 평했다.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은 “한국 금융회사들이 아직은 시스템보다 CEO의 개인적 역량과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김 회장 역시 심한 고민 속에서 용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의 기자회견엔 그런 고민과 용단에 대한 김 회장의 단상들이 짙게 묻어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향후 계획은.

 “경영에 직접 관여할 생각은 없다. 하나고등학교 이사장 임기가 8월이면 끝나는데 처음 입학한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봤으면 좋겠다. 미소금융 이사장은 지난달 연임 발령을 받았다. 하나금융이 심부름해 달라고 하면 할 각오가 돼 있다.”

-30년 이상 임원 생활을 했는데, 리더십의 핵심이 뭐라 생각하나.

 “금융산업은 서비스업이다. ‘두 가지 눈’이 필요하다. 하나는 ‘사람 마음을 읽는 눈’이다. 고객은 뭘 원하는가.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뭘 생각하는가. 모든 경영자의 숙제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미래를 읽는 눈’이다. 미래를 다 알 순 없겠지만, 확률적으로 남들보다 1%라도 더 미래를 읽는 눈이 생긴다면 그게 바로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인으로서 자랑스러웠던 순간과 아쉬웠던 부분은.

 “위험을 감수하고 지원한 기업이 회복돼 살아나면 정말 보람을 느낀다. 친한 친구 회사의 대출을 회수해 부도난 적이 있을 때는 ‘왜 이 업종에 몸을 담았을까’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금융의 속성이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결국 미래를 보는 눈을 조금씩이라도 더 키워야 한다.”

 -한국금융이 한 단계 발전하려면.

 “결국 사람이 아닐까. 외환위기 때 우리 금융산업이 큰 자극을 받고 한 단계 발전했다. 은행과 비은행 양쪽의 지식을 갖고 미래를 볼 수 있는 선견지명(foresight)을 어떻게 길러 주느냐가 문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네트워킹을 어떻게 해 주느냐는 게 우리 일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좀 더 활약을 하려면.

 “금융업은 신용도 차이를 먹고사는 장사다. 아무리 잘해 본들 국가 신용등급이 낮은 상태에선 해외에서 활약하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본궤도에 올라갈 때가 됐다. 우리 신용등급이 이탈리아보다 높아졌다.”

 -우리 금융시장이 과점 상태는 아닌가.

 “어려운 얘기지만 아직 과점으로 보진 않는다. 모바일 시대로 갈수록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데 돈이 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는 건 금융밖에 없는 사람이다. 금융인으로서 이렇게 끝을 맺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행복하다.”

김혜미 기자

미소금융 제도권 금융회사 이용이 곤란한 저소득·저신용자에게 일정 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사업(Micro Credit). 2009년 12월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현재는 기업과 금융회사가 출연한 기부금과 휴면예금 등의 자금을 재원으로 미소금융재단을 설립·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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