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콤플렉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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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호 18면

일러스트=강일구

툭하면 웃통을 벗고 나와 복근을 자랑하는 데다 러시아 무술인 삼보와 레슬링을 즐겨 한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4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에서 3선을 노리고 있는 그다. 하지만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의 독일 사무소에 근무하던 30대 시절에는 비만에 우울증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구혼을 할 때도 살벌한 말만 해서 장래의 아내를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니 원만하고 부드러운 성품은 분명 아닌 것 같다. 러시아와 앙숙인 체첸 반군이 암살을 위협해도 끄떡 않는다니 그 인상만큼 냉혹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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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비밀경찰이었던 푸틴은 덕분에 다른 러시아인에 비해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레닌그라드 대학을 다닐 때 유일하게 자동차를 가진 학생이었다 한다. 아버지처럼 KGB 요원이 되는 게 꿈이었다니 그의 파워 콤플렉스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푸틴뿐만 아니라 악의 축을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미국 경제를 도탄에 빠뜨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나,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아버지의 유훈대로 노동자들에게 철저히 냉혹했던 영국의 대처 전 총리는 모두 아버지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의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 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모델이 되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어쨌거나 푸틴이 정권을 잡은 후 러시아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탓에 그의 지도력과 역량이 얼핏 탁월한 듯 보인다. 그러나 실은 러시아산 석유 등 천연자원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세계적 갑부가 된 러시아 석유회사 유코스의 총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감옥에 보내 속죄양으로 삼아 국민의 소외감을 달래기도 했지만, 유가 상승의 가장 큰 수혜자는 오히려 푸틴인 셈이다. 경제가 좋아졌으니, 여전히 국가를 자신의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할 듯싶다. 탐욕스러운 서방 자본가와 대항하기 의해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내세우는 그의 거대 담론(meta-narrative)이 얼마나 오래 약효를 발휘할지 지켜볼 뿐이다.

러시아·중국·북한·이라크·이란 등 전체주의 국가는 공통적으로 서구자본이 지배하는 제국주의와 싸워야 한다는 선동적 기치를 앞세운다. 반대로 서구는 성적 본능에 인간이 종속된다는 프로이트주의, 합리성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데카르트식 과학주의, 영성과 신앙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종교 등의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혼재해 독재 정권이 들어설 틈이 상대적으로 좁다.

공감과 소통에는 인색하고, 자기과시는 과감하며, 정치는 냉혹하게 하는 푸틴 정권과 독재 3대를 거치면서 황폐함과 부패가 극을 달리고 있는 북한이 앞으로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하다. 올해와 간지가 같은 임진년 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조선의 양반들은 자리다툼에 정신이 없었다. 반면 당시 일본은 각지의 봉건 영주들을 강력한 쇼군의 지배하에 두기 위해 전쟁이라는 명분이 필요했고, 계부에게 학대받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인질로 불행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전쟁광도 득실댔다. 이웃 나라의 정치상황에 무지했던 조선시대의 무능한 양반과, 언제 어떻게 총구를 겨눌지 모르는 나라에 둘러싸여 있지만 사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대한민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후세에 얼마나 다른 평가를 받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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