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초당적 대북정책 기대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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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남북 간은 물론 남남 간에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사안 중 하나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4 남북공동선언’이다. 이명박 정부와 남측의 보수진영은 이 선언이 북핵 문제는 제쳐놓고 일방적인 대북지원만 포함돼 있어 액면 그대로는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북측과 남측의 진보진영은 이 선언으로 조성될 ‘한반도 평화’는 돈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으니 이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은 2008년 7월 11일 국회 개원 연설을 통해 “10·4 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10·4 선언에 대한 정권 출범 초의 부정적인 시각에서 한발 벗어나 대화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날 터진 북한 초병에 의한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동력이 상실됐다. 정체상태에 있던 남북관계는 2009년 하반기 들어 정상회담을 위한 싱가포르 준비접촉이 순조롭게 진행돼 급격히 진전될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북한 붕괴론’에 사로잡힌 정권 내 인사들의 손을 이 대통령이 들어줌으로써 정상회담은 물거품이 됐다. 이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태가 터져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보수 일각에서는 북한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남측 정부도 있다’는 매서운 맛을 보여주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그러나 뚜렷한 비전이나 원모심려(遠謀深慮)의 전략 없이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취임사에선 “남북관계를 이념이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수습과정에서 ‘자주’를 생명처럼 여기는 북한이 도저히 받기 어려운 ‘현장 조사’를 요구했다. ‘실용’을 내세웠으면 ‘퇴로를 열어두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통일이 도둑처럼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남측은 지난 20년간 대북정책에서 강경과 유화를 모두 구사해 보았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보는 남측 내부의 대세, 북한체제의 특수성, 국제 역학관계 등을 감안할 때 이제는 ‘유화’에 토대를 둔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이 필요한 때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 앤 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현저히 숫자가 많은 20~40대의 상당수가 북한을 경계보다는 협력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압력에 대해선 똘똘 뭉치는 북한체제의 속성도 변할 가능성이 전무하다. 2009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북한 후원에 들어선 중국의 입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남측이 경제제재를 해도 뒷문이 훤히 열려 있는 것이다. 물론 햇볕정책으로 남측이 북측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대내외 상황에서 대북 강경정책으로만 일관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심지어 우라늄 농축 중단과 영양식품 지원을 맞바꾼 북·미 합의에서 드러나듯이 한국만 소외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양상마저 초래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4공동선언을 ‘존중해야 할 약속’으로 규정한 것은 의미가 새롭다. 이로써 대북정책에 대한 접근법은 차기 여야는 물론 ‘한반도 포럼’을 비롯한 북한 연구학회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공통기반을 갖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차기 정부에서는 초당적으로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이 추진되길 기대한다. 북한의 도발에는 한 치의 오차 없이 강력 응징하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화와 개입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현 정부의 지지도가 떨어진 데에는 이를 거꾸로 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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