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플로라의 재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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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호 24면

‘꽃무늬’는 여성복의 고전적 소재다. 알록달록 지천에 흐드러진 꽃은 그 자체로 봄이다. 진부하다면서도 봄이면 어김없이 플로럴 프린트가 등장하는 건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꽃을 다루기란 만만치 않다. ‘플로럴 프린트’ 대신 ‘꽃가라’라는 말로 바꿔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여성미의 상징’이기는커녕 철 지난 유행이 되기 십상이다.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만만하면서도 까다로운 꽃을 다양하게 풀어냈다. 물론 마르니처럼 여성적인 꽃 본래의 이미지를 복고적으로 표현한 경우도 있지만 새로운 방식과 실험이 다양하게 이뤄졌다.

2012 봄·여름 패션 트렌드

윌리엄 모리스식 율동적 패턴 윌리엄 모리스는 꽃과 나뭇잎, 넝쿨 등 자연을 모티브로 삼아 율동적인 패턴을 완성한 19세기 영국의 공예가다. 현재 벽지 디자인 상당수가 그의 패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런웨이 위에서도 윌리엄 모리스 식 ‘꽃무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뭇잎과 꽃을 주 모티브로 한 프로엔자 슐러가 그렇다. 그의 ‘꽃무늬’도 식물을 주제로 사용했고 곡선의 변화, 율동을 강조한 추상적 특성을 지녔다. 다만 생기 넘치는 원색을 사용해 패턴의 역동성을 더 강조했다. 윌리엄 모리스 디자인은 대륙으로 건너가 아르누보(Art-nouveau) 양식의 바탕이 되는데, 아르누보 화가의 대표적인 사람이 알폰스 무하다. 꽃과 잎새의 무늬와 기호를 매혹적인 여인과 함께 짜 넣은 그의 작품이 ‘패턴’은 아니다. 하지만 간결한 선을 흘러내리는 곡선으로 표현한 스타일은 매우 장식적이다. 템퍼리 런던의 실크 드레스에 그려진 유려한 꽃은 무하의 작품에 등장한 꽃처럼 우아하다.

형태보다 화려한 색감에 집중 꽃은 클로드 모네와 같은 인상파 작가의 영원한 소재였다. 뜰에 만발한 꽃, 거리의 꽃가게는 주요한 작품 주제가 됐다.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에 주목한 이들은 간결하지만 강렬한 붓놀림으로 다채로운 색을 표현했다. 마리 카트란추, 블루걸 등도 형태보다는 화려한 색깔로 꽃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특히 런웨이를 화단으로 꾸민 카트란추의 꽃은 빨강·노랑·분홍 꽃이 색깔별로 줄지어 피어 있는 화단을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워홀의 ‘꽃’ 앤디 워홀은 극도로 단순화한 꽃을 반복 배치해 ‘꽃(Flowers)’을 찍어냈다. DKNY는 워홀의 꽃을 작게 만들어 마구 찍어낸 듯한 무늬를 나타냈다. 형태와 색깔을 단순하게 표현해 오히려 강한 인상을 줬던 워홀의 ‘꽃’처럼 DKNY도 빨강·파랑만을 사용한 극적 대비로 넘치는 생동감을 표현했다. 다이안 본 퍼스텐버그의 컬렉션에서도 커다란 꽃잎인지, 별인지 모를 커다랗고 간결한 녹색 무늬가 등장했다.

사랑스런 이미지를 뒤집어라 조지아 오키프는 극도로 클로즈업한 꽃을 그려 관능과 열정이라는 꽃의 비밀을 드러냈다. 사랑스럽고 여성스러운 꽃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시도는 런웨이에서도 눈에 띄었다. 꽃으로 강한 여성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예다. 블루마린의 의상은 열대우림에서 피어날 것 같은 원색의 강렬하고 큼직한 꽃이 뒤덮었다. 로베르토 카발리의 굵고 붉은 꽃송이도 로맨틱하면서 도발적이다. 프라발 구룽의 꽃은 아라키 노부요시의 ‘관능적인 꽃(sensual flowers)’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았다. 좌우 대칭이거나 녹아내리듯 흘러내리는 꽃은 디자이너의 말처럼 “시들어 가는 꽃의 에로틱한 느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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