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랜드마크를 찾아서] 2.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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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혁명의 노도(怒濤) 가 휩쓸고 지나간지 2세기가 지난 오늘. 파리의 바스티유 광장은 여전히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혁명의 거리'다.

사회주의자건 시장경제 신봉자건, 때로는 무정부주의자들까지도 크고 작은 정치 집회를 열기 위해 광장 한복판 '7월의 탑' 아래로 몰려든다. 주당 35시간 근로제의 확대를 요구하는 노조, 교육개혁을 외치는 교사와 학부모,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이 프라이드' 등 각종 시위행렬는 여기서 출발한다.

1789년 7월 14일 성난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앙샹 레짐(구체제)'의 상징이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써 대혁명의 심지에 불을 당긴 그날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일까.

그로부터 꼭 2백년 뒤인 1989년 7월 13일. 바스티유 광장과 센강을 잇는 파리 아스날 운하를 타고 들어온 '문화의 거함(巨艦)'이 바스티유에 닻을 내렸다.

단 7명의 국사범을 가둬두느라 1백10명의 수비대가 지키던 요새 감옥이 거만하게 버티고있던 자리에, 광장쪽으로 뱃머리를 내밀고 있는 거대한 선박의 모습을 형상화한 '오페라 바스티유'가 들어선 것이다.

연면적 16만㎡, 높이 80m(지하 30m) 총수용인원 3천5백명으로 파리에서 프랑스국립도서관·재무부 청사에 이어 3번째로 큰 건물이다.

바스티유 오페라의 입항은 프랑스에 또 하나의 혁명을 낳았다. 프랑스 혁명이 왕과 귀족·성직자들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줬다면, 오페라 바스티유는 일부 가진 자들만의 향유물이던 예술 주권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문화혁명의 발상지가 됐다.

오페라 바스티유가 생기기 전 파리의 유일한 오페라극장이었던 팔레 가르니에(1875년 개관)의 입장료는 최고 1천5백프랑(약 23만원) 이었다.

오페라 바스티유는 그것을 절반 이하인 6백70프랑(약 10만원)으로 깎아내렸다. 오페라 관람을 엄두도 못내던 서민들의 발길이 하나둘 이어졌고 바스티유와 가르니에를 함께 관장하는 파리 국립 오페라(ONP)는 오늘날 연간 80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자랑한다.

바스티유 오페라의 등장으로 관객 수가 두 배로 늘었는데도 객석 점유율은 종전처럼 90%선을 유지하고 있다. 가격의 대폭 인하로 특히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층들이 오페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과거 20%를 조금 웃돌던 10∼30대 관람객들이 요즘엔 38%에 이르고 발레 공연에서는 47%까지 올라간다.

공연예술 중에서도 가장 귀족적인 오페라의 대중화를 통한 예술인구의 저변 확대, 그것이 프랑스 정부의 문화정책이며 그 첫 단추를 꿴 사람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다.

82년 새로운 오페라의 건설을 발표하면서 미테랑은 "상징적 집회 장소인 바스티유에 대중을 향해 열린 예술의 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오페라 바스티유는 루브르 박물관 광장의 피라미드, 라 데팡스의 신(新)개선문, 프랑스국립도서관 등과 함께 20세기말 프랑스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 사업 '그랑 프로제'의 일환이다.

오페라·발레를 위한 대극장(2천7백3석), 연극·무용 등을 공연하는 원형극장(4백50석), 기타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스튜디오(2백37석) 등을 갖춘 초대형 공간의 탄생으로 혁명의 거리가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원래 기차역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바스티유 오페라 주변에는 갤러리와 영화관, 소규모 콘서트홀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95년 파트릭 베르제의 설계로 고가 철도를 개조해 만든 '예술의 고가도로(아치형의 단층 상가 건물과 옥상의 산책로)'에는 화가나 조각가등 예술가와 금속·목공예·카페트·보석세공 등 장인들의 아틀리에, 컴퓨터·소프트웨어 매장, 카페·패션 스토어 등이 속속 입주했다. 예술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바스티유 일대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중에서도 맏형격인 오페라 바스티유는 공연 외에도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무료 강좌, 배우들과의 무대뒤 대화, 무용 시범, 각종 전시회등을 주최하며 문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9억 프랑(약 1천3백50억원) 이 넘는 예산(2000년) 가운데 64%를 차지하는 정부 지원이 주 원동력이다.

파리 중서부의 교통 중심지로 늘 활력이 넘치는 바스티유 광장은 새벽이 되도록 불이 꺼지지않는다. 오페라와 영화·콘서트를 감상한 관람객들이 쏟아져 나오는 밤 10시를 지나면서 주변의 카페와 레스토랑은 예술과 문화를 논하는 시민들의 정열으로 새삼 뜨겁게 달아오른다.

"오페라 바스티유요? 내 인생 자체지요."

일주일에 두번 이상 바스티유에서 오페라와 영화 등을 즐긴다는 수의사 아드리앙 방당브뢰크(31)의 짧은 한마디는 파리지앵들의 삶속에 자리잡은 바스티유의 비중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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