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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엮어 연극 ‘산후조리원이야기’ 만든 40대 여배우 4인

중앙일보

입력

자신들의 산후조리 경험으로 꾸민 연극 ‘산후조리원이야기’의 이영주, 이경성, 한록수, 정필이씨(왼쪽부터). 배우들과 자녀들이 함께 무대 위에서 포즈를 취했다.

대학로 한 소극장에 중년 여배우 네 명이 모였다. 한록수(인천 부평구 부평5동), 이경성(강서구 화곡동), 정필이(이상 48?관악구 청룡동), 이영주(47?용산구 동빙고동)씨는 친구 사이다. 각자의 산후 경험담을 퀼트처럼 정성스레 짜기운 연극 ‘산후조리원이야기’로 무대에 선 그들은 이 연극을 마치고서야 진정한 ‘엄마’로, ‘배우’로 다시 태어났다고 고백한다. 아이를 낳아 본 경험과 감동이 장면마다, 대사마다 싱싱하게 살아있어 보는 내내 여성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산후조리원 ‘속이야기’와 그들이 공연에 담지 못한 무대 밖 이야기를 극본처럼 풀어봤다.

● 제1막, 연극의 탄생

이경성: 산후조리원에서 경험한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심지어 남편도 몰라요.

한록수: 5대 독자를 낳은 며느리를 위해 산후조리원에 막무가내로 무당을 앞세우고 들이닥친 시골 시부모님 에피소드에서는 모두 깜짝 놀랐었지요.

정필이: 젖을 돌게 한다며, 한 밤중에 산모들이 막걸리 파티를 하는 장면은 압권이죠.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젖병에 담아 커피 캐리어로 나르는 아이디어는 최고였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영주: 그렇다고 내용이 너무 가벼운 것만도 아니죠. 외국인 산모들에 대한 편견이나, 요즘 너무 쉽게 생각하는 임신중절 수술을 다룬 것도 잘 한 것 같아요. 이제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이니까요.

정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번 대학로 무대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

이경성: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여자로 태어나 엄마가 된 사람들 모두에요. 자신들의 내밀한 경험을 무대란 공간에서 마음껏 이야기해주니 관객들도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까?
 
● 제2막, 배우의 탄생

한록수: 우리가 어떤 사이냐고요? (뿌듯한 눈빛으로)네 명이 처음 만난 것은 2000년이에요. ‘나너우리’란 교육극단을 만들고, 의기투합해서 교육 연극 무대를 함께 꾸려갔죠. 연극을 하면서 이렇게 죽이 맞는 동료이자 친구를 만난 걸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꾸준히 일 년에 네 편 이상, 100회 넘는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친구들 덕분입니다. 저 혼자라면 아마 못했을 거예요.

이경성: 배우지만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그 공통점의 정점이 이번 연극 ‘산후조리원이야기’예요. 모티브는 록수에게서 나왔죠.

한록수: 나이 마흔에 시어른들이 기다리시는 귀한 5대 독자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6주 가량 입원했었어요. 노산이었던 탓에 배려해주신 거죠. 그때 ‘거짓말 아냐?’라고 반문할 정도로 독특한 산모들을 만났어요. 모유가 펑펑 솟아나 고민인 ‘젖소부인’ 산모, 산후 조리 중에 몰래 나이트클럽 갔다 망신당한 산모 등 하나같이 연극에서 막 뛰쳐나온 듯 살아있는 캐릭터였어요.

이영주: 이를 토대로 ‘우리들의 연극’을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어요. 그 동안 남의 옷을 입고 연기를 했다면, 우리에게 딱 맞는 옷을 입고 무대에 서고 싶었던 거죠. 저는 선배들의 실제 경험에, 귀동냥으로 들은 산후조리 비법을 보탰어요. 오소리 쓸개즙이나 푹 고은 돼지 족이 젖을 돌게 한다는 것은 아무나 모르는 비법이랍니다(웃음).

정필이: 산후조리원이란 공간을 설정하고, 한 장면이 정해지면 각자 그 부분에 맞는 대본을 숙제하듯 써오기도 했죠. 연기는 해봤지만, 대본 쓰는 것은 별개의 문제더라고요. (땀 닦는 시늉을 하며)꼴딱 밤을 지새기도 하고…. 각자 써 온 대본 중 가장 좋은 에피소드를 이어가며 한 달 반 만에 공동 창작 대본을 완성했어요. 저희로서는 눈물겨운 ‘사투’였어요.
 
● 제3막, 엄마의 탄생

이경성: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하며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어요. 선물처럼 내게 온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설렘과 경이로움, 그리고 감격에 겨워 흘렸던 뜨거운 눈물…. (허공을바라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끼고 당황한 듯) 나만 그런가?

정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니, 나도 그랬어! 각자의 삶을 펼쳐놓고 함께 눈물 흘리고, 때로는 손뼉 치며 공감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요. ‘배우 하길 잘 했다’ ‘엄마여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이영주: 저희만큼 관객들도 많이 공감하시더군요. 부천에서 초연할 때, 휴지를 꺼내놓고 눈물 훔치는 여성 관객들이 꽤 있었어요. 우리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 이야기가 결국 여자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과 맞닿아있으니까요. ‘여자는 아이를 낳아봐야 인생을 안다’는 대사에서는 무릎을 탁 치시더라고요.

한록수: 제 딸은 연극을 보고 통곡하듯 울었어요. 왜 울었는지 물으니 “엄마의 열정이 담겨있어서, 무엇보다 연극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에”라고 해요. (눈에 눈물이 맺힌 채) 그리고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라고 했을 때는 저도 울컥했어요.

이경성: 큰 딸 지애는 “산후조리가 저렇게 힘든 줄 처음 알았다”며 “엄마 잘 부탁해”라고 하던걸. (모두 떠내려갈 듯 웃는다.)

이영주: 대학로 무대에서 ‘산후조리원이야기’를 다시 공연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입소문이 나서 더 많은 분들과 만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래요.

이경성: 죽는 날까지 무대에 서는 게 바람인데,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예요. 기회가 된다면, 공동 창작으로 만든 연극을 또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세 명을 바라보며) 함께 해줄 거지 친구야?

배우들은 미소를 머금은 채 눈빛으로 이경성 씨의 질문에 답한다.

(내레이션)연극 ‘산후조리원이야기’는 지난 19일 설치극장 정미소의 무대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네 배우의 용기 있는 도전은 오래도록 계속될 것입니다. -막-

<강미숙 기자 suga337@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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