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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어린이·청소년 생각·경험 차이 배려한 ‘눈높이 교육’은 아직 멀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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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 30여 명이 도로 북송될 위기에 몰렸다. 국내 가족과 인권·시민단체의 피 끓는 호소가 가슴을 엔다. 따지고 보면 나도 탈북자 가족이다. 60여 년 전 아버지는 평북 정주, 어머니는 함남 함흥에서 각각 월남했다. 남에서 서로를 만났다. 그나마 당시는 전쟁 통이라 월남자든 이남 토박이든 피차 앞가림에 정신없었다. 탈북자에 대한 차별, 유식한 말로 타자화(他者化)하는 정도가 훨씬 덜했다는 말이다.

 서울 남산 기슭의 ‘여명학교’는 탈북 청소년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로는 유일하게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는 곳이다. 이 학교의 조명숙(42) 교감은 대학 시절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으로 사회봉사를 시작했다. 2004년 여러 교회의 지원을 받아 여명학교를 열었고, 재작년 대안학교 설립·운영 규정이 바뀐 덕분에 학력인정을 받았다. 조 교감은 일요일인 그제 하루에만 시민 1500명으로부터 탈북자 북송 반대 서명을 받아냈다고 한다.

 아이를 낳은 다음엔 잘 키우는 게 중요하다. 탈북자도 우선은 대한민국 땅을 무사히 밟아야 하지만 이후에는 제대로 잘 살게끔 배려해야 한다. 똑같은 인간이자 동포이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살아있는 통일 과정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러나 거리가 좀 멀다. 국내에 사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은 종종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양 행세한다. 차별받기 싫어서다. 탈북자들도 조선족인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우리 안에 숨어있는 편가름·멸시의 암종(癌腫) 탓이다.

 특히 탈북 어린이·청소년을 ‘눈높이’에서 가르치는 게 핵심이다. 조 교감에 따르면 북한 출신 학생들은 실수를 인정하는 데 본능적으로 공포·거부감을 느낀다. 가혹한 생활총화(자아·상호 비판) 체험의 영향이다. 스포츠 경기도 무조건 이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경기 규정을 지키라고 타이르면 “그거 지키면 어떻게 살아요?”라고 되묻는다. 죽음의 그림자, 기아, 악다구니를 통과해 기적처럼 탈북에 성공한 여파다. 굶다가 갑자기 영양 공급이 재개된 탓에 60%가량이 당뇨·빈혈에 시달린다. 30%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법 규정의 사각지대도 문제다. 탈북 학생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이지만 법이 규정한 학비(교육급여) 혜택 대상자가 아니다. 북한이탈주민 보호·정착 지원법에 따라 입학금·수업료가 처음부터 면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명학교 같은 곳은 수업료를 받지 못하고 국가 지원도 못 받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급식비도 안 나온다. 이렇게 되면 대안학교는 물론 일반 학교도 앞으로 더욱 늘어날 탈북 학생을 받아들이기 꺼릴 게 뻔하다. 사각지대를 서둘러 손보아야 한다. 탈북자 문제를 곰곰 들여다보면 문제는 그들에게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로 여겨진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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