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가 표절? … 연극 각색자 손들어 준 법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원작자 고혜정(左), 각색자 문희(右)

책은 물론 영화·연극·뮤지컬로 대박이 터진 ‘친정엄마’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알려지지 않았던 원작을 몰래 베꼈다”라는 식의 기존 표절 논란과 영 딴판이다. 각색자가 오히려 원작자를 고소하고 나섰다. 원작을 토대로 쓰여진 각색물을, 역으로 원작자가 다시 베꼈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일단 각색자 손을 들어주었다.

 과정은 이렇다. 2004년 수필 『친정엄마』가 출간됐다. 방송작가 출신 고혜정씨(44)가 썼다. 자신의 소박한 일상을 섬세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려내 반향을 일으켰다. 30만 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연극·뮤지컬 등이 잇따라 제작됐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하나의 콘텐트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것)였다.

 첫 번째는 2007년 고두심 주연의 연극 ‘친정엄마’였다. 신예작가 문희(31)씨가 대본을 썼다. 원작이 수필인 터라 연극에 적합하게끔 각색을 했다. ‘서울댁’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가미했고, 어머니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복선을 삽입하는 등 극적 요소를 구축했다. 연극 역시 크게 히트했다.

 2010년엔 뮤지컬도 올라갔다. 중견배우 김수미·나문희씨 등이 주연을 맡았다. 뮤지컬 대본은 문씨나 제3의 인물이 아닌, 원작자 고씨가 직접 썼다. 뮤지컬 역시 2년간 200여 회 공연되며 인기를 끌었다.

 분쟁은 이 무렵부터 불거졌다. 2011년 각색자 문씨가 “뮤지컬 대본이 연극 대본을 베꼈다”라며 원작자 고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문씨 측은 “등장인물, 사건의 유사성은 물론 뮤지컬에 나오는 상당수 대사와 지문도 연극 대본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씨 측은 “내 원작을 토대로 뮤지컬 대본을 썼을 뿐”이라며 반박했다.

 이와 관련돼 서울 남부지법은 지난달 “고씨가 뮤지컬의 구성 요소인 노래 가사를 추가하거나 엄마의 젊은 시절 장면을 추가하였을 뿐, 문씨의 동의 없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 대사 등 표현의 대부분을 그대로 옮겼다”라며 고씨에게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원작자 고씨가 각색자 문씨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산형 재판의 경우 검사가 약식절차에 의해 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 홍승기 변호사는 “각색도 엄연한 또 하나의 창작 행위라는 걸 분명히 보여준 사례”라고 평했다. 고씨 측은 이번 법원 명령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원작자의 각색물 표절 논란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