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임주리 기자의 ‘캐릭터 속으로’ ② 개콘 ‘꺾기도’ 김준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김준호

인간은 언제부터, 왜 웃기 시작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장편 『웃음』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기원전 321255년 아프리카. 부족 간 싸움이 붙었다. 한쪽 우두머리가 적을 치려고 돌덩이를 치켜든 순간,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똥을 싼다. 똥은 우두머리의 눈에 정통으로 떨어진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폭소가 터진다.’

 작가에 따르면 유머의 기원은 ‘몸’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몸이 평소 모습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 다음은 ‘말’일 터다. “싫으면 시집 가” 류의 말장난. ‘공감개그’ ‘시사풍자’는 그 다음 차례다. 유머는 진화했고, 우리는 이제 예능을 볼 때도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래서일까. ‘꺾기도’에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5일 첫 방송 이후 인터넷을 평정하며 떠오른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다. ‘꺾기도 도장’의 관장 김준호(37)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모든 것을 뜬금없이 꺾어 상대방을 공황 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기술”을 가르쳐주겠노라고. 멀쩡히 대화를 하다 “큰일났습니다람쥐”라며 다람쥐 흉내를 내고 “놀랬냐옹이”라고선 고양이 춤을 추는 식이다. “‘꺾기도’를 연속 5번 봤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게 왜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별 뜻 없어서요.”

 어쩌면 우리는 ‘머리 쓰며 보는 개그’에 살짝 피로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불현듯 옆구리를 찌르는 김 관장의 기술에 말려든 거다. 시대를 거슬러 유머의 기원으로 되돌아간 개그가 이리 반가울 수가.

 김준호. 데뷔 15년차다. 엄청난 개인기나 화려한 말발은 없다. 다들 그를 알지만, 그를 ‘대세’로 꼽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는 한결같았고 뭐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을 수 있게 됐다. 조금은 물러나있는, 그러나 여전히 현역인 김준호라면 버라이어티부터 콩트, 궁극에는 ‘유머의 기원’까지도 건드릴 수 있을 거라고.

 믿음을 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상대를 믿는 것. 김준호 또한 시청자를 믿었을 거다. 이런 무모한 개그에 도전하다니. “정말 놀랐습니다람쥐~”

ADVERTISEMENT
ADVERTISEMENT